동행 - 배문성
내가 비로 내려
땅을 적시고 흙 속으로 들어가
어두운 돌 속까지 스며들어
당신께 갈 수 있다면
당신이 가리킨 산목련 한 송이라도 피워줄 텐데
스미는 대로 손을 내밀어
얽힌 돌은 가두고 착한 흙은 모아서
젖을수록 부드러운 땅을 내놓으면
그 곳에 따뜻한 햇살이 찾아오기도 할 텐데
당신이 잠들면 나는 숨소리 고르며
슬픔도 힘이 될 수 있다고
토닥이는 빗소리로 들려줄 텐데
상처 없이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 모든 것에게 다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해주며 같이 걸어갈 수 있을 텐데
*배문성 시집, 노을의 집, 민음사
저녁 산 - 배문성
혼자 깊어가는 너를 어쩔 것인가
멀고 또 멀어, 끝없이 사라지고 있는 저 산자락 앞에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들이 차례로 찾아와
저물고 있다
삶을 매듭짓는 방식은
이렇게 저무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도 모르게
그냥...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견디는 것이란
상처란 상처는 다 끄집어내,
죄값을 묻고 또 물어
스스로 괴롭히고 난 뒤에도
살아남는 것
그래... 견디는 것이란
한없이 넘어가는 저녁 산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
오래 견뎌온 상처들이 하나씩 둘씩 밀려오는 저녁
상처를 내려놓은 삶들이 천천히 사라지고
저녁 산은 끝없이 아득한 저 너머로 넘어간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의 낙관 - 김장호 (0) | 2013.02.24 |
---|---|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 - 홍윤숙 (0) | 2013.02.23 |
유전자는 그리워만 할 뿐이다 - 이문재 (0) | 2013.02.15 |
마흔여섯의 길 건너기 - 권오표 (0) | 2013.02.10 |
시래기 한 움큼 - 공광규 (0) | 2013.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