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는 떠나고, 나는 - 강윤후

마루안 2016. 2. 28. 21:57



너는 떠나고, 나는 - 강윤후



그리하여 너는 떠나고 나는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남고 너는 떠나게 되었다
바람이 어둠의 등을 떠밀어 전신주들은
긴 그림자에 기대어 건들거리며 휘파람 불고
사람이 아쉬운 마을마다에
불빛들은 반딧불처럼 모여드는데
먼데서 가까운 데로 되돌아오기 위하여
너는 떠나게 되고
나는 남게 되는지
지레 겁을 먹은 나무는 분주히
가지를 접으며 주저앉고
머큐로크롬을 쏟아부은 듯한 노을이
저녁의 이마를 적시며 지나가는 시간
돌아선 네 뾰족구두의 뾰족한 그 끝이
뾰족한 기억으로 나를 찌른다, 아주 아프게
차라리 네 가는 곳
모래 언덕들 사슬처럼 맞물려 흐르고
전갈이 발목을 깨무는 사막이라면
선명한 바람의 무늬 따라 걷다가 길을 잃고
마침내 푸른 샘의 기억을 지닌
한 포기 선인장으로 네가 피어난다면, 그러나
그러한 네 풍문이 들려오기도 전에 나는
바다로 가야 한다, 거기서 나는
미리 보아야 한다
갇힌 물들이 세월처럼 풀리는 것을



*시집, 다시 쓸쓸한 날에, 문학과지성








겨울 염전 - 강윤후



헐한 일당(日當)처럼 바람 분다
퉁기듯 날아오른 갈매기 두어 마리
바람에 덜미가 잡혀
날갯짓 뻑뻑하고
오래 전에 멎은 水車 슬그머니
고갈난 기억의 바닥을 긁는다
더 바랄 것 없어서 절망인지
바닷물을 잘게 빻아 소금을 구워내던 햇살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눕고
은박지 같던 지난 여름이
텅 빈 소금 창고에 스산하게 구겨져 있다
막소주 한 잔에도 목이 쉬던 사내들
더 받아쥘 일당이 남지 않아
모조리 실업의 계절로 흩어지고
마른 개흙에 희끗하게 번지는 소금발 따라
키 낮은 갈잎 날리며 방죽으로 나서면
완강하게 닫힌 무쇠 수문
몰려온 바다의 잦은 발길질에
퍼렇게 멍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