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노을, 그 빛나는 그물 - 문신

마루안 2017. 12. 15. 20:35



노을, 그 빛나는 그물 - 문신



또 한 친구의 거덜 난 삶을 매장한다
녹슨 대못을 박듯 탕탕 두드려
땅속 깊이 짧은 생애를 박아 넣고
미처 다 박아 넣지 못한 여생은
둥근 봉분으로 남겨둔다


또 하루의 해가 저문다
일꾼들이 챙겨가지 못한 연장 두어 자루와 함께
둥근 저녁을 맞는 동안
거미 한 마리
서쪽 물목에 촘촘한 금빛 그물을 직조해놓는다
제 삶의 반 바퀴밖에 달려보지 못한 맹목의 영혼이
노을, 그 빛나는 그물에 갇혀 아우성이다


서쪽 하늘이 봉분처럼 둥글게 부풀어 올랐는가!


또 하나의 어둠이 거미의 아가리 속으로
칭칭 감긴 호흡처럼 고스란히 잦아든다



*문신 시집, 물가죽 북, 애지








부음 - 문신



새 한 마리 빠르게 날아와
두어 번 울어주고는
휙, 사라진다


부음(訃音)이다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린다
떠나고 남은 자리는 그렇듯 흔들리는 법
앉았던 것들의 체온을 털어내기 위한 몸짓이다


흔들리기 전까지 나뭇가지는
새의 도약을 얼마나 마음 졸이고 지켜보았을 것인가
사뿐히 밀어내는 발길이 심장 쪽으로 전해지고
푸드덕, 하는 날갯짓의 메아리가 잦아들 무렵부터
나뭇가지는
혼신을 다해 흔들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가 거느렸던 그림자까지 거두어가면서
몹쓸 기별만 저렇듯 흔들리게 던져놓은 새 한 마리


우체통에 배달되어온 부고장을 펴보는 날이면
오래 흔들리곤 하였다
내 안에서 그 사람의 그림자가 지워지고
그 사람의 체온이 빠져나간 만큼
흔들림은 내면 깊은 곳까지 휘었다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두어 번 우는 것을 보니
또 한차례 심정의 바닥까지 흔들리는 날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