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흰머리 - 하상만

마루안 2018. 3. 28. 23:12



흰머리 - 하상만



거울을 보며 흰머리를 뽑습니다
자주 검은 머리를 뽑습니다
언제나 빛을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나는
혼자 살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눈앞에 삐죽하고 나온 것이지만
가려워, 등 뒤 깊은 곳
긁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제 젊은 의사는 믿을 수 없고
군복 입은 사내들은 어려 보입니다
옛날 여자들은 모두
흰머리를 뽑다가 떠났습니다
젊음을 포기하면
혼자서 살 수 있으리라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오늘도 흰머리 하나를 뽑기 위해
검은머리를 여러 개 뽑았습니다
뿌리가 뽑혀나가는 상처인데도
간질간질합니다
흰머리와 검은머리가
다정히 섞여 있습니다
둘을 떼어놓기 힘듭니다



*시집, 간장, 실천문학사








황학동 시장 2 - 하상만



담벼락 옆에
성인용 시디를 팔고 있었다


한 손에 시디 뭉치를 들고
점잖게 사내들이
한 장씩 제목을 읽고 있었다


담벼락에는
위험, 기대지 마시오
라고 씌여 있었다


늙수레한 사내들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담처럼
보였다






하상만 시인은 1974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동국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5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인디언식으로 사랑하기>, <간장>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