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목련꽃 아래서 - 이완근

마루안 2018. 4. 1. 21:13



목련꽃 아래서 - 이완근



4월이었다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핀 골목길이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오메 반갑다. 또 이렇게 피워줘서 겁나게 고맙다야."
연신 중얼거리고 계셨다
마치 주문을 외우고 계신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랑곳없다는 듯 감탄해 마지않았다
목련이 참 예쁘게도 피었었다
봄바람이 곱게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할머니께서 내년에도 이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이렇게 간절하게 목련꽃을 다시 보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4월 아침이었다



*시집, 불량아들, 문학의전당








꽃에게 - 이완근



내 그리움, 외로움
반으로 나누고 쪼개서
봄볕 양지쪽에 널어놓으리, 먼지로 부스러질 때까지
내 영혼까지 바짝 말라
눈물마저 가슴마저 하나가 되었을 때
바람결에 날려 보내리


그리하여
내 그리움, 외로움
저 꽃 속에서 부활하려니





# 흔한 소재와 쉬운 어휘로 울림을 주는 시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나이 먹은 사람에게는 이 풍경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꽃은 해마다 저절로 피지만 내가 꽃을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래저래 오는 봄도 그립고 가는 봄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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