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벚꽃 핀 날 - 정일남

마루안 2018. 3. 31. 22:32



벚꽃 핀 날 - 정일남



꽃이 오려면 줄을 서서 순서대로 올 것이지

한꺼번에 덮치니 숨이 막힌다

청춘남녀들아

꽃 잔치가 좋지만 순간임을 알라

하늘을 덮은 점령군을 보면 어지럽다

상춘 인파는 물 흐르듯 밀려간다

길을 막은 차량과 경적소리가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봄은 꽃 폭탄을 터뜨렸으니

저 상춘객들 흘러가고 나면

꽃 장례는 누가 치를 것인가



*정일남 시집, 감옥의 시간, 시와에세이








복사꽃마을을 떠나며 - 정일남


 

마을 앞으로 기차가 지나가네

내다보는 사람은 없지만 복사꽃은 한철이네

기적은 마음을 울리고 가네

금테모자 쓴 역장은 다음 기차를 기다리네

그대가 봄 편지 전해주기 전에

복사꽃은 다 가버렸으니

누이의 뺨에 맺힌 눈물보다 분홍이네

봄 편지 늦게 보낸 것을 미워하다가도

누이가 이 세상 사람 아니란 걸 알고

나는 복사꽃마을을 떠나네

복사꽃 한철은 가고

복숭아 따 먹는 철이 온다 해도

그가 올 가망은 없는 거지





# 며칠 전부터 꽃눈을 내밀던 벚꽃이 오늘 보니 활짝 피었다. 만개는 아니어도 제법 피어 흐드러졌다. 서울에서 3월의 벚꽃은 낯설다. 평소보다 열흘 정도 빨리 피었다. 꽃샘추위 물러나고 며칠 이상 고온현상이 계속되더니 꽃들도 덩달아 서둘러 피었다. 남녘에는 며칠 전부터 만개했단다. 이런 날씨라면 복사꽃도 피기 시작했겠다. 일찍 핀 꽃은 서둘러 떠날 것이다. 미처 쳐다볼 틈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