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 함태숙
명왕성은 왜 제일 먼 길로 돌아서 갈까
몸이 곧 담벼락인
그의 바깥엔 아무것도 없는데
어떤 고독한 결말을 먼저 알아
불의 외곽에
멀찍이 물러서 있나?
빛을 탐하지 않으며
빛을 오로지 지키는
침묵 깊은 별 하나
이 궤도는 너무나 멀어서
눈빛 잠깐 일별하는데도
우주가 다 타버려
한 달은 너무 급하다
두 달은 되어야 너를 볼 것이지
눈앞에서 휙 사라지지
소란스런
별의 군중 속으로
점, 점, 점 멀어지는 모습
다시 돌아오는 것도
끝, 끝, 끝내러 오는 모습
*시집,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 한국문연
행성, 물들다 - 함태숙
구름이 궤도를 낮춰
은행나무 속으로 들어갈 때
바람은 오랜 선율을 데려와
낯선 이들의 마음을
한 잎에 포갰다
저물녘
불그스레하게 부은 눈두덩 위로
뒤척이는 은행 빛
사선으로 날던 기러기 떼들은
아둠을 끌고 와
속눈썹처럼 가지런히
상한 얼굴 위를 내려 덮고
제각기 남루해진 하루의 노고들은
지금 값없는 위로를 받고 있는 것
누가 먼저 물들어 슬픔을 달래는가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이 행성에
# 함태숙 시인은 1969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중앙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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