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만 겹의 날개 - 김창균

마루안 2018. 4. 13. 21:10



만 겹의 날개 - 김창균



백목련 지고, 자목련이 피기 시작한다

크고 실한 꽃들은 꽃 시절이 짧았으므로

죄지은 날들 또한 짧았으리

간밤에 꽃같이 환한 열망을 가슴에 달고

누군가는 다음에 올 누군가에 꽃자리를 내주며

한 생을 넘어갔으나

꽃을 버린 목련나무는 의연했다

이 의연함 앞에서

만 겹의 날개를 달고도 날지 않는

무쇠 같은 목련이여

꽃 피는 건 부럽지 않으나

꽃 지는 게 더 부러운

오, 팔랑 팔랑대는

만 겹의 봄이여



*시집,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문학의전당








꽃구경 - 김창균



옷장을 연다, 거기 내가 사랑했던 한 시대가 걸려 있다.

저 통시적인 불편함들이 붉은 꽃무늬로 장식된 봄

나는 겨울 외투를 벗고

지나간 시절 한 벌 꺼내 입는다.

순간 화사하게 번지는 무늬들, 붉은 꽃들.

겨울옷을 입은 나와 봄옷을 입은 나무들은

서로 건너다볼 뿐 말이 없다, 말이 없어

옷장 앞은 잠시 침묵이고 침묵이 길어지면

저 어색을 달아나기 위해 나는 고민할 것이다.

색 다 날린 봄옷을 입은 벚나무 아래서

생각해보면 아득하니

너는 너 쪽으로만 눈이 멀고

나는 내 쪽으로만 눈이 멀었었구나


그리하여

서로가 낯설게 마주하며

나도 너도 알싸하게 분분하게 저물고야 마는구나.

마치 파경처럼 꽃잎이 지는구나.






# 김창균 시인은 1966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강원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먼 북쪽>,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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