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날 - 고운기

마루안 2018. 4. 13. 22:01



봄날 - 고운기



차창車窓으로 먼 마을은
붉고 하얀 여리고 억센 꽃의 화음


나는 늘 저 마을에 가보고 싶었다


산수유에서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 벌고 벚꽃 날리는 그늘 아래로 가면
이 마을을 이룬 사람들의 환한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나를 실은 자동차는 너무 빠르고
여기는 정류장 없는 동구洞口


이루어지지 않은 봄날 속에
어느덧 사라진 꽃마을의 모서리가 마르도록 오래
나는 떠도는 것이다.



*시집,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문학수첩








봄의 노래 - 고운기



봄은 왔다
그냥 가는 게 아니다


봄은 쌓인다


내 몸은 봄이 둘러 주는 나이테로 만들어졌다
스무 살 적 나이테가 뛰기도 하고
그냥 거기 서 있으라
소리치기도 한다


어떤 항구의 풍경이 그림엽서 속에 잡히고
봄밤을 실어 오는 산그늘에 묻혀
어둠이 어느새 마을을 덮어 주는 내내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봄은 왔다 그냥 가지 않는다





# 오래된 봄날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르는 시다. 내 몸은 봄이 둘러 주는 나이테로 만들어졌다는 구절이 확 감겨온다. 50번 넘게 봄을 지나왔지만 여태 이런 생각을 못하고 보냈다. 그렇다고 이 봄이 특별할 것은 없다. 곧 꽃잎은 떨어지겠지만 아직 봄은 남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나이테를 보태고 봄은 떠날 것이다. 시인이 봄은 그냥 왔다 가지 않는다 했지만 어쩔 것인가. 기다림도 보냄도 언제나 쓸쓸한 게 봄이니,,,, 이놈의 나이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