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철들기 좋은 시간 - 이성배

철들기 좋은 시간 - 이성배 추석 전날 아파트 외진 놀이터 벤치, 반백의 노인과 대여섯 살 됨직한 여자아이가 각자 전방을 주시한 채 말없이 앉아 있다. 노인은 담배를 피우고 여자아이는 왼손에 과자 봉지를 들고 있다. 바삭바삭한 웃음소리가 프라이팬의 기름방울처럼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튀었다. 두 사람은 TV를 틀어 놓고 조용히 앉아 저녁을 먹은 후 아이가 갖고 싶어했던 열두 색 색연필을 사러 갈지도 모른다 유난히 낮이 길어 아이에게는 철들기 좋은 시간이었다. *시집, 희망 수리 중, 고두미 생태공원 조성부지 - 이성배 제비 새끼들처럼 쉼 없이 재잘대며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찔레꽃 피는 봄은 언제나 배경이었다. 상을 팔러 오는 사람, 화장품을 팔러 오는 사람, 그릇을 팔러 오는 사람, 면사무소..

한줄 詩 2019.09.16

달 - 신동호

달 - 신동호 달에게 빌었던 어머니의 소원 중 몇 번의 소원이 이뤄졌을까. 대부분은 이뤄지지 못했을 거 같다. 대부분은 자식들 잘되길 빌었을 터이니 말이다. 달에게 빌었던 나의 소원 중 몇 번의 소원이 이뤄졌을까. 대부분은 이뤄지지 못했을 거 같다. 대부분은 나부터 잘되길 빌었으니 말이다. 이제 자식들 잘되라고 소원을 빌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둥근 등이 보름달이었음을 깨닫는다. 달에 업혀서 잠든 세월이 있어 달이 그리웠던 게다. 달에게 빌었던 소원들이 아직 이뤄지지 못한들 어떨까. 달그림자가 길어질 때 어머니와 나의 밤엔 또 하나의 그리움이 피어날 터이니 말이다.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어디 갔을까?, 실천문학사 백별님 - 신동호 봉건의 그늘이 가방 안에 가득 담겼다 혁명을 해야 하는 사내들은..

한줄 詩 2019.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