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기 좋은 시간 - 이성배
철들기 좋은 시간 - 이성배 추석 전날 아파트 외진 놀이터 벤치, 반백의 노인과 대여섯 살 됨직한 여자아이가 각자 전방을 주시한 채 말없이 앉아 있다. 노인은 담배를 피우고 여자아이는 왼손에 과자 봉지를 들고 있다. 바삭바삭한 웃음소리가 프라이팬의 기름방울처럼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튀었다. 두 사람은 TV를 틀어 놓고 조용히 앉아 저녁을 먹은 후 아이가 갖고 싶어했던 열두 색 색연필을 사러 갈지도 모른다 유난히 낮이 길어 아이에게는 철들기 좋은 시간이었다. *시집, 희망 수리 중, 고두미 생태공원 조성부지 - 이성배 제비 새끼들처럼 쉼 없이 재잘대며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찔레꽃 피는 봄은 언제나 배경이었다. 상을 팔러 오는 사람, 화장품을 팔러 오는 사람, 그릇을 팔러 오는 사람, 면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