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코스모스 - 사윤수

마루안 2019. 9. 19. 22:00



코스모스 - 사윤수



코스모스가 살아온 방식은

한결같이 흔들렸다는 거다

이 바람결에 쏠리고 저 노을 쪽으로 기울며

제 반경을 끊임없이 넘어가던 그 범람이

코스모스의 모습 아니던가

가만히 서 있을 땐 속으로 흔들리는 꽃

몸이 그토록 가늘고 긴 것은

춤을 추라고 생겨난 것이다

가늘고 길수록 춤은 위태하니

위태해야 더욱 춤인 것을


어머니께서 나를 지으실 때

꽃대 무너진 아득한 어둠 속에서

그 꽃잎 한 움큼 뜯어 삼켰던 것일까

내 몸의 성분은 수많은 코스모스의 퇴적물 같다

눈을 감아도 흔들리고

국밥집 앞에서 개업식 공연하는

각설이 타령만 들어도 춤추고 싶다

한복 입고 환영식에 나온 평양아가씨들 같은

코스모스는 뜨겁게 흔들리다 죽은 것들의 환생이다

흔들리며 사는 것들의 뒤통수에서 수군거리지 말자

가을 국도(國道)의 평화는 온통

코스모스가 이루어 놓은 것이니



*시집, 파온, 최측의농간








벽에 박힌 못이 흘러내렸다 - 사윤수



거듭 내리치는 우레와 불꽃을 품고 돌이킬 수 없는 절벽 깊이 박혔다 단 한 걸음도 허락되지 않는 견고한 부동의 곡예 실핏줄 균열마저 움켜쥐어야 더욱 단단히 뿌리를 내릴 것이므로, 피가 맺히는 자세를 묵묵하게 버텨내는 것에 너의 지극함이 있었다


벽의 지층에서 못의 뿌리가 갈래갈래 자랐다 어둠을 먹고 못은 붉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싶었을 것이다 이마가 은색인 족속이 저무는 나의 기슭과 마주칠 때마다 유난히 빛난다면 그것을 저녁별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나 못도 오래 박혀 있으면 누군가 거는 외투만으로도 그 사람 생의 무게를 잴 수 있다


배호(裵湖)의 음성 같은 가을, 등에 못이 박힌 사람들이 서성인다 등이 벽인 줄 알고 잘못 일어난 일일까 귀뚜라미 노래로 만든 목걸이를 못에게 걸어주자 박혀있던 못이 굵은 첫 빗방울처럼 툭 떨어진다 시간의 어금니 하나 빠지듯 허공 아래 풍덩! 그토록 드팀없던 한 세계가 해탈 와불이다


빈 동굴 한 채 유적지 되어

벽에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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