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69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 - 박가인 개인전

우연히 공감 백 배의 전시회를 알게 되었다. 작품 기법이나 실력을 떠나 모두가 공감하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박가인 작가는 인생을 제대로 아는 예술가다. 박가인 작가는 자기 아버지를 모델로 삼았다. 직장에서 퇴직한 아버지의 무료한 일상을 몰래 찍은 듯한 기법으로 사진에 담았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으나 잠시 발길을 멈춘 사람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흔히들 사는 게 뭐 별건가? 라고 말한다. 맞다. 그러면서 가끔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느냐고 푸념을 한다. 그게 인생이다. 사는 게 매일 재밌기만 하면 얼마나 인생이 번잡하고 시끄러울까. 인생에 모법 답안은 없다. 당연 정답도 없다. 재미없다면서 또 열심히, 아니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꾸역꾸역 사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이 ..

여덟 通 2019.06.26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크니 전시회를 다녀왔다. 사설 미술관은 차치하더라도 공공 전시장 불모지였던 서울에 이런 미술관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정도 나들이 삼아 들르는 곳이다. 옛날 대법관 건물을 앞부문만 남기고 새로 개축했다는데 상설 전시는 물론이고 커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에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내처 시청까지 걸으며 덕수궁 돌담길의 계절 변화를 감상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14년을 산 덕에 호크니 그림은 많이 봤다. 호크니는 영국인의 자랑이다. 영국인은 옛날 화가로는 윌리엄 터너, 현대 화가로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끔직히 사랑한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걸린 호크니 그림 앞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서울 전시는 처음이라는데 비싼 입장료에 비해 ..

여덟 通 2019.06.03

창작과 비평 2019년 여름호 시인 탐색

새로 나온 시집을 처음 접할 때처럼 금방 나온 따끈한 문예지를 들출 때도 마음이 설렌다. 이걸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나. 맛난 음식 앞에서 군침이 도는 것처럼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 또한 내게는 식욕처럼 무언가를 전달하는 에너지원이다. 이번엔 어떤 시가 실렸을 거나. 문학과 사회와 함께 창비는 늘 나를 설레게 하는 잡지다. 다른 세련된 문예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처럼 두 잡지는 내 청춘의 추억 속에 담긴 문예지다. 애지중지 모았던 그 많은 과월호를 모두 떠나 보냈지만 나름 치열했던 시절은 여전히 그 잡지들과 함께 가슴에 남아 있다. 이번 호에는 두 시인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의 시를 올릴까 하다 그냥 두 사람 다 올리기로 한다. 두 편씩 시를 발표했으니 네 편이다. 전부 올리자니..

여덟 通 2019.06.01

정인진 칼럼 - 사법연수원 동기 노무현, 그립다

# 경향신문에서 정인진 변호사의 칼럼을 읽었다. 검사,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라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는데 판사 출신의 이 양반 글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가슴 시린 문장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법연수원 동기 노무현, 그립다 내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가을 사법연수원에서였다. 7기생 전원 58명이 교실 하나에 모여 앉아 2년을 보냈으니, 나도 그를 조금은 안다고 할 만하다. 동기생 중 유일한 고졸 학력이고, 늘 웃는 얼굴의 촌사람풍이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거셌다. 맨 처음 기억나는 일은 연수원에서 소풍을 갔을 때였다. 연수생들이 나와서 각종 장사치 흉내를 내는데, 뱀장수, 속옷장수 다음에 그가 나와서 면도날장수 흉내를 냈다. “그럼 이 돈을 다 받느냐?”라며 물건..

여덟 通 2019.05.27

고재군 개인전 - 그리운 날에

포스터에서부터 끌림이 있었다. 그림도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이 작가의 그림이 그랬다. 구경하고 말 그림이 있는 반면 한 점쯤 사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그림이 있다. 고재군의 그림은 소장하고 싶은 그림이다.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어떤 심성을 가졌기에 이렇게 시적인 그림을 그리는가. 작가가 궁금했다. 1972년 生이다.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개인전도 열 번 넘게 했고 단체전은 셀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하다. 작가는 그림은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비포장 도로에 늘어선 미루나무 사이로 덜컹거리며 달리는 완행 버스, 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봄날, 꽃길 아래 버스는 또 어떤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매력이 있다. 지나간 것들은 전부 그리운 것인가. 꽃 구경을 마치고..

여덟 通 2019.04.15

김석영 개인전 - 空卽是色

인사동에 갔다가 포스터의 강렬함에 이끌려 들어간 전시였다. 2년 전인가. 그의 개인전을 처음 봤었다. 대부분의 그림이 원색적인 데다 유독 말 그림을 많이 그리는 작가다. 그때도 그랬다. 22회 전시면 매년 전시회를 했다해도 20년이 넘는 대단한 작품 활동이다. 그림 시장에서 그만큼 잘 나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긴 그의 그림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강렬한 색상에다 거친 붓놀림이 더욱 생동감이 살아있다. 그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어릴 적 봤던 무당옷이 생각났다. 무당이 신이 내리면 모르는 누군가가 묻어 둔 무구(巫具)를 찾아 낸다고 한다. 찾은 무구로 인해 신을 받은 무당은 자신의 무구를 어딘가에 묻는다. 나중에 신내림을 받게 될 무당 또한 그 무구를 찾아내야만 무당이 될 수 ..

여덟 通 2019.04.02

장사익 소리판 - 자화상 七

인천에서 10대 사춘기 시절을 온전히 보냈다. 그때부터 알고 지낸 내 친구 중에는 인천 토박이들이 몇 명 있다. 이 공연도 그 친구 중 하나가 예매한 공연을 함께 본 것이다. 우연이었다. 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사익 공연을 본 감상을 이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나중 기회가 오면 자기도 꼭 장사익 공연을 보겠노라 했었다. 공연 날 아침에 문자가 왔다. 오후에 열리는 장사익 소리판에 올 수 있냐는 거다. 장사익 공연을 모르고 있었기에 귀가 솔깃했으나 다른 일정이 있어서 바로 약속을 할 수 없었다. 1시간 후에 답을 주겠다 하고 일정 수정에 들어갔다. 양해를 구했더니 바로 양보해준다. 내가 장사익 왕팬임을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 공연장에 가기로 약속하고 나서 두어 시간쯤 지나 다시 친구..

여덟 通 2019.03.10

곱게 늙은 소년 - 정태춘

올해가 정태춘 데뷰 40주년이란다. 정확히는 41주년이나 10년 전에 아내 박은옥의 데뷰 30주년을 기리면서 그만 그렇게 굳어졌단다. 40주년이든 41주년이든 가수에게는 소중한 기념이다. 요즘 나오는 가수 중에 과연 20주년인들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80년대 중반, 뭣도 모르고 겉멋만 잔뜩 들어 싸돌아다닐 때 정태춘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풍물하는 친구였는데 늘 계랑 한복을 입고 다녔다. 일산이 신도시가 되기 전 백마역 부근은 자주 가던 곳이었다. 신촌역에서 교외선을 타고 백마역에 내리면 황량한 내 청춘에 화색이 돌았다. 그곳에서 친구와 듣던 청태춘의 노래 촛불이 생각난다. 어서 스무 살이 되고 싶었으나 막상 스무 살이 되어도 별 볼일이 없던 시절, 동동주에 발갛게 물든 얼굴로 촛불이 눈물..

여덟 通 2019.03.05

그림자 든 골목 - 강재훈 사진전

눈여겨 보고 있는 사진가였는데 참 좋은 전시를 봤다. 강재훈은 한겨레신문사에서 오랜 기간 일하고 있는 저널리즘 사진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보도 사진에 더해진 예술 사진이다. 전시장도 비교적 넓고 작품 또한 방대해서 실컷 좋은 사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 속의 공간은 내게도 익숙한 공간이다. 아현동, 북아현동, 중림동, 만리동 등 개발 되기 이전에 지인들이 살던 곳이어서 자주 갔던 곳이다. 이후에도 울적할 때면 짧은 여행 삼아 만리동 고개를 넘어 청파동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자주 걸었다. 골목길 사진 하면 김기찬 선생이었다. 줄기차게 골목길을 카메라에 담아 여러 권의 골목길 사진집을 남겼다. 김기찬 선생의 뒤를 이어 강재훈이 골목길을 담고 있다. 이 전시에 나온 사진들에 담긴 공간은 사라진 골목길..

여덟 通 2019.02.02

마르셀 뒤샹 전시회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만 있던 시절엔 미술관 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했다. 경복궁 옆에 서울관이 생긴 이후로 미술관 나들이가 훨씬 쉬워졌다. 가끔 인사동을 걷다 내처 현대미술관까지 들르는 나의 도심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로 마르셀 뒤샹 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학창시절 미술 선생님이 들려줬던 서양미술의 소소한 뒷얘기가 참 흥미로웠다. 로트렉, 모들리아니, 뭉크, 고흐, 고갱 등, 유명 작가들의 예술세계와 사생활까지 참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 얘기를 들었다. 당시의 뒤샹이 전시품을 철거당하는 거부감이 있었듯이 미술 선생님도 어떻게 변기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아주 어렵게(?) 설명을 했다. 교실 뒤쪽의 불량기 있는 몇몇 친구들은 만화책 넘기느라 정신..

여덟 通 2019.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