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마르셀 뒤샹 전시회

마루안 2019. 1. 29. 19:48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만 있던 시절엔 미술관 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했다. 경복궁 옆에 서울관이 생긴 이후로 미술관 나들이가 훨씬 쉬워졌다. 가끔 인사동을 걷다 내처 현대미술관까지 들르는 나의 도심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로 마르셀 뒤샹 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학창시절 미술 선생님이 들려줬던 서양미술의 소소한 뒷얘기가 참 흥미로웠다. 로트렉, 모들리아니, 뭉크, 고흐, 고갱 등, 유명 작가들의 예술세계와 사생활까지 참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 얘기를 들었다. 당시의 뒤샹이 전시품을 철거당하는 거부감이 있었듯이 미술 선생님도 어떻게 변기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아주 어렵게(?) 설명을 했다. 교실 뒤쪽의 불량기 있는 몇몇 친구들은 만화책 넘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 전시도 어김없이 변기가 있었다. 복제품이긴 하지만 유리 상자 속의 소변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별 감동은 없었지만 그의 기발한 발상 만큼은 인정했다. 뒤샹 하면 변기가 떠오르지만 <자전거 바퀴>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도 유명하다.

피키소가 몇날 며칠 화폭 앞에서 그림을 구상하고 색칠을 해서 작품을 완성하는데 뒤샹은 버려진 변기에 달랑 싸인을 해서 예술이라고 출품했다. 지금이야 개념미술이 자리매김을 했지만 당시의 미술계는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래도 샘이라는 제목은 참 좋다.

작품을 보고도 왜 그를 현대미술의 대가라고 하는지는 큰 공감이 가지 않았다. 미술계가 그렇게 인정을 하니 나도 그러려니 할뿐, 전시장을 도는 사람들은 얼마나 감동을 받을까. 문득 전시장을 돌다 관객을 바라보기도 했다.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다.

이 대가의 작품에 왜 그렇게 미술계가 열광하는가. 미술계의 이런 찬사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공감하기는 싫었다. 그래도 유명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지 않은가. 도록에서만 봤던 작품을 실제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다. 뒤샹의 작품에 친숙해진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