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69

앙리 마티스 전시회 - 라이프 앤 조이

앙리 마티스 전시회를 다녀왔다. 지난 9월에 전시회 소식 듣고 바로 얼리버드 티켓을 샀다. 입장료 2만 원의 절반 값인 1만 원이다. 새해 들어 가야지 했다가도 자꾸 일이 생겨 미뤘는데 1월까지만 유효한 표여서 오늘 제대로 시간을 냈다. 요란한 전시회 홍보에 비해 내용이 그리 알차지는 않다. 전시장의 방대한 작품 수는 홍보한 그대로다. 그러나 유화는 한 점도 없고 대부분 드로잉 같은 흑백 작품으로 에칭, 석판화, 리놀륨컷, 아쿼틴트, 리도그래피 등이다. 가족끼리 온 관람객들이 수근거린다. "뭐, 별 거 없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딱 내 마음이 그랬다. 입장료 2만 원을 내고 보기에는 다소 중량감이 떨어진다. 그냥 마티스의 작품을 실물로 봤다는 정도에 위안을 삼는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

여덟 通 2022.01.22

아이웨이웨이 전시회 - 인간 미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생기면서 전시회 나들이가 훨씬 수월해졌다. 동물원 가는 길 구석탱이에 숨어 있는 과천까지 가지 않고도 좋은 전시를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날들인가.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창궐하는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관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중국의 건축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 전시다.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어로 艾未未(애미미)로 표기를 한다. 본명인지 예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이름에는 "아직 결실을 맺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품고 있다. 이것은 내 해석이니 틀릴 수도 있다. 어쨌든 그의 전시회 제목이 인 것과 연관 시키니 그럴 듯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예술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정치다. 그리고 예술은 반드시 승리한다." 아이웨이웨이가 늘 내세우는..

여덟 通 2022.01.20

연극 - 이순재의 리어왕

코로나로 오랜 기간 공연장엘 가지 못했다. 첫 번째 공연장 나들이가 연극 리어왕이다. 조기예매 티켓으로 30% 할인 가격으로 봤다. 프리뷰 공연은 40% 할인이었는데 경쟁이 치열해서 구하지 못했다. 그래도 제일 싼 등급이지만 일찍 서둘러 구입이 가능했다. 표 구하고 나서 며칠 후에 공연일이 한참 남았는데도 이미 전석 매진 소식에 일찍 일어난 새가 좋은 먹이 구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리어왕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작품이다. 오래 전에 리어왕을 본 기억이 있는데 누가 리어왕을 했는지 배우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이번 공연은 포스터에서부터 이순재의 리어왕이다. 87세의 나이에 리어왕을 한다는 게 대단하다. 더구나 이번 리어왕은 각색을 하지 않아 공연시간이 3시간이 넘는다..

여덟 通 2021.11.05

여인숙 - 이강산 사진전

이강산 사진전을 보고 왔다. 코로나로 전시장 나들이도 부담스러운데 이 전시는 놓칠 수 없었다. 그동안 여러 번 전시회를 열었지만 이강산 사진전 관람은 처음이다. 사진가보다 시인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의 사진 열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는 시집을 네 권이나 낸 중견 시인이면서 이제는 어엿한 사진가로 자리 매김을 했다. 이번 전시에서 다큐 사진의 진수를 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여인숙을 오랜 기간 찍어 온 귀한 작업이다. 이제 그를 시인보다 작가로 불러야 할 것이다. 뭐든 새것이 우선이고 화려하고 뽀시시한 것이 좋다는 세상이다. 이제 여인숙은 여행가와 나그네의 고단한 다리를 쉬게 했던 숙박업소가 아니다. 바닥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마지막 주거 공간이거나 저렴하게 욕구를 풀 수 있는 성..

여덟 通 2021.10.30

월간 현대시 2021년 10월호

베껴 쓰는 습관 - 최준 대문 없는 옆집 혼자 사시는 무당 할머니 지붕 위 낡은 깃발은 신통력의 은유(隱喩)인가 허리와 무릎을 앓고 보청기로 세상과 소통하지만 유모차 밀 힘이 발바닥에 여즉 남아 복대와 고통의 어시스트로 집 앞 텃밭을 가꾼다 내 집 앞 블록담장 밑에도 오이 모종 하나 심어주셨다 중부내륙 적설(積雪)이 다시 초록의 망망대해를 일굴 때까지 점 보러 오는 이 못 봤다 마당 구석 포도넝쿨 아래 꼬리만 살아 있는 개 한 마리 애기 시절 신내림이라도 받았는가 마주칠 적마다 엉덩이 요령을 흔들어댄다 인생이 동그라미가 맞아요, 원이 맞아요? 지랄허네 푸성귀나 뽑아다 처먹어 할머니도 저와 인연인가요? 이년? 아마존 강보다 긴 고무호스 끌고 나와 무당 할머니 아침을 시원스레 물 뿜으신다 텃밭의 장배기가 올..

여덟 通 2021.10.18

경춘선 - 서울 생활사 박물관 전시회

경춘선이 전철로 바뀌면서 예전의 낭만이 사라졌다. 기차가 현대화 되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추억도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늘 아쉬움을 남기는 법, 옛 추억을 돌아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초여름부터 시작되었으나 코로나가 안정되기를 바라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서야 가게 되었다. 더 미루면 영영 못 볼 것 같았다. 같은 서울인데도 노원구는 조금 멀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간다. 태릉역에서 가깝다. 경춘선은 내가 탄 열차 중 가장 많이 탄 노선이다. 주말이면 경춘선 열차는 늘 만원이었다. 맘모스 백화점이 있던 청량리역 광장 시계탑 주변에는 바리바리 맨 배낭족들로 가득했다. 돗자리 챙길 여유는 없었지만 기타와 녹음기 꼭 챙겼다. 화랑대와 퇴계원 들녘을 지나면 산과 강이 번갈아 보이는 풍경에 뛰어..

여덟 通 2021.09.11

날개 없는 나비들의 날갯짓

[2020 도쿄 패럴림픽]팔이 없는 수영 선수들 남자 접영 50m S5 결승 #패럴림픽 #butterfly youtu.be #난데없는 코로나로 일 년 미뤘다가 치러진 이번 올림픽은 단연 여자배구였다. 올림픽은 모든 국가가 참가할 수 있지만 기준 기록이란 것이 있어 그 기록을 넘어야만 자격이 주어진다. 구기 종목도 당연 지역 예선을 치러 통과한 국가만 참가할 수 있다. 여자배구가 아시아 예선을 통과한 것도 축하할 일인데 본선에서 강팀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8강, 4강에 진출한 것은 극적이면서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그 기쁨이 배가된 것이다. 그 열기를 이어서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다. 우연히 나비들의 날갯짓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장애인들의 수영 경기..

여덟 通 2021.08.30

현대시 8월호에서 발견한 시

올 여름은 빨리 시원해져서 좋다. 유독 무더위가 일찍 찾아와 이 긴 여름을 어찌 견디나 했는데 다행히 며칠 새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서늘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이 더위에 마스크 쓰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요즘은 한결 나아졌다. 현대시 8월호에 눈에 띄는 시가 보인다. 최백규 시 두 편이다. 가수 최백호는 알아도 최백규 시인은 처음이다. 시를 읽고 정보를 찾아 보니 꽤 젊은 시인이다. 최백규는 1992년 대구 출생으로 2014년에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동인 시집을 내긴 했으나 아직 개인 시집은 없는 모양이다. 화가가 한두 작품 출품한 그룹전만 열었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개인전을 가진 적 없는 것과 같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첫 시집이 조금 늦어진들 어떠리. 창..

여덟 通 2021.08.17

걷는 독서 - 박노해 사진전

박노해 시인은 언젠가부터 글 쓰는 일보다 사진 찍는 일에 더 열성을 보이는 작가다. 가슴 저미는 그의 시에 공감했던 터라 이번 사진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늘 그랬던 것처럼 새책을 내면서 함께 사진전을 여는 것이다. 그동안 그의 사진이 흑백 위주였는데 이번 사진은 컬러다. 그의 사진과 글을 작은 액자로 제작해 판매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우울한 시기에 실내에 걸어 두면 공기청정기처럼 마음을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 사진들이다. 이번에 나온 책 는 성경책처럼 두껍지만 크기는 손바닥 정도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그답지 않게 다소 덜 효율적인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책 크기가 작다보니 당연 사진도 명함 크기 정도에 머문다. 뭐든 커야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눈이 적응할 정도는 돼야 하는데 아쉽다..

여덟 通 2021.07.04

한영수, 이노우에 코지 사진전 - 그들이 있던 시간

류가헌에서 의미 있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한영수와 일본인 사진가 이노우에 코지의 2인전이다. 생전에 둘은 일면식도 없었지만 훗날 두 사진가의 자녀들의 눈에 작품이 들어오면서 교류하게 된다. 자녀들은 두 작가의 사진이 유사한 점에 착안해 서로 교류하다 이번 전시가 마련되었다. 두 사람이 활동했던 1950년대와 60년대 서울과 후쿠오카의 풍경을 담았다. 50년대 후쿠오카와 60년대 서울은 전쟁의 후유증을 아직 벗지 못했던 때다. 한영수 선생의 사진은 언제 봐도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작가도 세상을 떠났고 당시의 풍경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이렇게 사진이 남아 옛날을 회상하게 한다. 사진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이런 작가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전시장은 두 작가의 일부 유사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

여덟 通 202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