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이창일

마루안 2022. 4. 18. 21:17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저자 이창일은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부끄러운 감정의 원천을 조근조근 파헤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성현들의 가르침도 틈틈히 인용한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부끄럽다는 말과 수치스럽다는 말이 대동소이하지만 수치라는 단어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얼굴을 더 빨갛게 만든다고 할까.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또 노회찬과 박원순도 생각이 났다. 그들은 수치스러움을 죽음과 바꿀 만큼 당신의 인생이 오염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죽음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들의 죽음을 존중한다.

 

구차한 변명을 하느니 미련 없이, 일본말 좀 쓰면 앗싸리 목숨을 버리는 삶을 택했다. 예전에는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을 봤다. 당일 본방 사수 못하면 나중 유튜브로 꼭 봐야 했던 프로다. 지금은 내게 MBC 뉴스데스크가 뉴스룸을 대신한다.

 

뉴스 중간쯤에 나오는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촌철살인의 감동을 주었다. 당일 뉴스의 엑기스랄까. 브리핑을 모아 책으로도 나와 있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동갑내기였던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는 앵커브리핑이다.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브리핑 막판에 손석희가 잠시 목이 멘 것처럼 나도 울컥했었다. 지금 새 정부의 후보자 몇은 후안무치의 십종세트다. 문제는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 다 욕심 때문이다. 비우면 부끄러움도 던다. 인간과 괴물의 차이를 제대로 알게 한 책이다. 책 끝부분에 공감 가는 글이 있어 일부 옮긴다.

 

<부끄러움은 인간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분비되는 사회적 감정이지만, 이러한 분비가 안 되는 부류가 반드시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들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부끄러움을 제대로 분비하는 인간의 삶이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부끄러운 일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지 못하도록,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각인시켜서 행동을 교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