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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풍으로 - 한명희

발라드풍으로 - 한명희 -지천명을 등에 업고 몸 여기저기 불다 만 풍선처럼 물집이 나 있다 눈 부릅뜨고 봐도 알 수 없는 세상을 위하여 시를 쓰던 당신은 모래밭에 집을 짓고 나는 발라드풍으로 노래를 한다 커피숍 한쪽 구석에서 너무도 자주 네 꿈을 꾸었기에 그때는 밤이었지요 말라비틀어진 나무에도 연분홍 꽃이 피는 아침 집채만 한 파도쳐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방파제 또는 열기구, 가슴속에 불을 지피던 여자를 찾아가다 추락한 어느 섬 헤엄쳐 나올 불면의 바다였지요 누군가 미소 띤 얼굴이 보내는 한 잔의 따뜻한 질책과 초승달 같은 눈빛의 차가운 격려 속에 모래밭에 집을 짓고 알 수 없는 시나 쓰던 당신처럼 지천명을 등에 업고 견디는 하루는 파도쳐 쉽게 지치고 사막을 걷다 물집에 잡힌 몸은 기댈 곳이 필요..

한줄 詩 2022.04.01

미스김 라일락 - 김미옥

미스김 라일락 - 김미옥 삼월에서 사월 사이 집중적으로 아파요 지하상가 입구에서 전단 돌릴 때 이마에 꽂히는 햇빛들 겨드랑이에 두 손 넣은 채 마시는 녹작지근한 공기 무관심한 선배들 심부름에도 창밖은 환하게 빛나요 휴일이면 해동된 채 잠만 자요 일억 년 후 깨어났는데 구석기 여인이 되어 있다면 산뜻한데 우울한 기분이 이런 걸까 월급이 제일 적은 내게 경리계장은 십 원짜리까지 철두철미했고요 그 아저씨 도박으로 횡령사고 냈을 땐 내 심장이 더 쫄깃했어요 바람이 확 구부러졌다가 매섭게 감기는 날 개나리 한 아름 화병에 꽂아두고 쓸모없어진 단백질처럼 웃었어요 어릴 때 기억은 중국집 간판처럼 희미하지만 교문 앞 할머니가 팔던 병아리 죽기 살기로 울어대던 주둥이들은 잊히지 않아요 삼사일 못 견디고 기어이 죽어 버린..

한줄 詩 2022.03.31

흉한 꿈을 꾸다 깬 저녁 - 심재휘

흉한 꿈을 꾸다 깬 저녁 - 심재휘 마루에 오후의 봄볕을 깔고 그 위에 담요 한장을 더 깔고 엎드려 턱 괴고 바깥을 보면서 잠이 든 모양이다 흉한 꿈을 꾸다가 깨어보니 어느덧 몸이 식은 저녁 돌아가시기 전에 속이 안 좋던 아버지는 식은 밥을 뜨거운 물에 말아 드셨다 무엇을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해 질 녘에는 내 등을 두툼하게 덮어주다가 기울다가 인사도 없이 떠난 햇살이 너무 멀고 흉한 꿈속의 사람은 노을 전 서편처럼 붉게 피었다 진다 삼월의 빈집은 겨울보다 더 추운 계절 동네 아이들 노는 소리가 왁자한 저녁에 차가워진 배를 문지르면 배는 이내 뜨신 물속의 식은 밥처럼 온기가 돌고 배 속 먼 곳은 손이 닿지 않아서 여전히 차고 자다 깬 저녁은 금세 어두워진다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

한줄 詩 202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