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디 에센셜 - 김수영

오래 전에 김수영 전집을 읽은 후 김수영의 글을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적이 없다. 김수영 시인은 1921년에 태어났다. 이 책은 탄생 백주년에 맞춰 나온 책으로 김수영 시인의 엑기스를 모은 책이라 하겠다. 60년이 지난 작품인데도 여전히 세련되게 읽히는 걸 보면 그의 재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았고 연극을 하다 시를 썼다. 육이오 전쟁 때 거제소 포로 수용소에서 2년 넘게 살다 석방된다. 만약 그가 백석처럼 북에 남았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분단으로 인해 많은 분야가 손실을 입었지만 예술계도 아까운 인재들이 묻히거나 단절되는 손실을 입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분단 세금이다. 그의 시는 읽는 맛이 있다. 특히 , , , , , , 등이 유독 읽는 맛이 있었다. 자주..

네줄 冊 2022.04.01

이제 가노니 - 허형만

이제 가노니 - 허형만 이제 가노니 본시 온 적도 없었듯 티끌 한 점마저 말끔히 지우며 그냥 가노니 그동안의 햇살과 그동안의 산빛과 그동안의 온갖 소리들이 얼마나 큰 신비로움었는지 이제 가노니 신비로움도 본시 한바탕 바람인 듯 그냥 가노니 나로 인해 눈물 흘렸느냐 나로 인해 가슴이 아팠느냐 나로 인해 먼 길 떠돌았느냐 참으로 무거운 인연줄이었던 것을 이제 가노니 허허청청 수월(水月)의 뒷모습처럼 그냥 가노니 *시집/ 있으라 하신 자리에/ 문예바다 뒷굽 - 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 봐 겁났고 우빨..

한줄 詩 2022.04.01

문득 뿔은 초식동물의 것이라는 생각 - 이현승

문득 뿔은 초식동물의 것이라는 생각 - 이현승 집도의가, 환자분 얼마나 아프세요? 일부터 십 중에 몇인지 말해보세요, 물을 때 이 악물고 뒹구는 사람의 고통이 십, 십, 아니 백이라도 결국 십을 찍으면 구나 팔로 향하게 마련이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할 때에는 뽑혀나간 뿔을 더듬는 심정으로 도대체 산 채로 제 뿔을 빼앗긴 심정은 어떨 것인가. 종종 우리가 마취제를 맞고서 훌쩍 다녀온 저 십의 세계란 한도를 초과하여 계측 불가능한 슬픔 같은 것은 아닌가. 그때는 딱 죽을 것만 같았지만 제법 살 만해졌다고 생각될 때, 그때 문득 다시 아프다. 아픈 건 늘상 처음 같은데 견딜 만하다는 건 처음만큼은 아니라는 거. 남보다 더 아파본 사람이 충고라도 한다. 꼭 십까지 가봐야 구나 팔에게 충고하는 건 아니다...

한줄 詩 202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