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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민들레를 울렸을까 - 이은심

내가 민들레를 울렸을까 - 이은심 올봄엔 노랑에 든 도둑이나 되어야겠다 손을 들어도 새 울음 따위가 그냥 지나가는 춘분의 변두리 존댓말로 입술을 핥는 아득함 속에서 내가 당신을 울렸을까 모아놓은 느낌표를 잠시의 사소함에 줘버리고 작년만큼 웃었는지 당신 없는 웃음을 접어 날렸는지 봄은 아무에게나 오지만 아무나 아픈 봄은 아닌 걸 세상이 쪼그려 앉아야 잘 보일 때 봄은 옳았고 앉은키로 다가가는 당신에겐 다 커버린 상처를 지지하는 혼자만의 처세술이 옳았다 장수하는 국화과의 아픔이 낳았으나 기르지 못한 미만(未滿)의 슬픔을 가만히 끊고자 무딘 노랑을 민들레로 보았던 것이다 냉이나 달래 앞에 허리를 굽힐 때 담벼락 아래 옆으로 옆으로 번성하며 꼭 하루 부족했구나 우리 사이 들판처럼 멀리 나가는 난색(難色)은 어린..

한줄 詩 2022.04.02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김애리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김애리샤 이장인 아빠가 마이크를 잡으면 난정리엔 주황색 난초꽃 향기가 공지사항처럼 번졌다 선거철엔 아빠가 전송하는 하얀 봉투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부자가 되었고 죽산포 술집에서 아빠의 딴따라는 깊은 밤 잠든 파도까지도 깨워 춤추게 했다 아빠가 지금 누워서 볼 수 있는 세상은 천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천장 가득 태어나는 꽃송이와 춤추는 파도를 바라보는 일 아빠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항문에서 찌그러진 달덩이가 굴러 나왔다 파내도 파내도 계속 나오는 달덩이 아빠는 점점 가늘어졌다 아빠 속을 다 파먹은 벌레들이 살이 올라 달덩이 흉내를 내며 아무렇게나 빛났다 가난도 아빠를 파먹고 무성하게 자랐었는데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일수록 부지런히 자란다 아빠가 헝겊 인형이라면 배를..

한줄 詩 2022.04.02

기상박물관 벚꽃 개화 구경

해마다 3월 초중순쯤 벚꽃 개화시기를 가늠해 본다. 제주를 시작으로 북상을 하니 서울은 당연 늦게 피는 편이다. 오늘 서울에서 벚꽃이 정식 개화를 했단다. 그 기준은 송월동 기상청 벚나무다. 나이 먹으니 말이 많아지고 좀스러워진다. 난데 없는 호기심으로 생전 안 하던 짓을 했다. 송월동 벚꽃 개화가 과연 표준인지 확인하고 싶어 기상박물관을 갔다. 예전에 교육청에 볼 일이 있으면 가끔 가던 곳이다. 바로 교육청 뒤에 기상박물관이 있다. 지금은 기상청이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그전에는 여기가 중앙관상대였다.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일기예보를 해주던 김동완 선생의 정겨운 목소리가 생각난다. 그 기상대 건물을 허물지 않고 잘 보존해 박물관이 되었다. 벚꽃이 절반은 피었겠지 했는데 이제 막 봉오리가 맺기 시작했다. ..

여섯 行 202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