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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도 빛이 - 권순학

어둠도 빛이 - 권순학 사월이 잔인한 것은 흐드러진 꽃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오기 때문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에스프레소 같은 날도 아포카토 같은 때도 있지만 잔만 바라보아야 하는 날 많고 빈 잔조차 없는 날 더 많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밤마다 글썽이는 별 누굴 찾으며 낮에도 저러고 있다고 그 뒤에 그가 있다고 누군가 말할 줄 알았다 누구는 잊고 누구는 세고 누군가는 세며 잊지만 어둠도 빛이 될 수 있다고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시집/ 너의 안녕부터 묻는다/ 문학의전당 비교 - 권순학 참 익숙하지만 무거운 그 말 누구나 무엇이든 적어도 한번쯤은 그 제물로 바쳐졌겠지만 SNS의 화젯거리 '계란 판과 갓 나온 종이 신문' 그들 효용성을 비교한다 바늘구멍으로 보거나 그..

한줄 詩 2022.04.18

목주름이거나 목걸이거나 - 나호열

목주름이거나 목걸이거나 - 나호열 한평생을 목줄에 묶여 이곳까지 왔다 굴복인지 서툰 깨달음인지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는 슬픔과 아니, 한평생을 질긴 목줄을 끊으려고 이가 닳고 몸이 이지러졌다는 노여움이 내게 목줄을 채운 그를 그립게 한다 끈질긴 추격자를 피해 몸을 부숴버린 바람이 당도한 망명지처럼 목주름은 세월이 내게 준 값나가는 목걸이 아무도 호명하지 않는 천일야화의 주인공이 되어 또 한 줄의 문신을 새기는 죽은 봄이다 *시집/ 안부/ 밥북 고시원 - 나호열 개천의 지렁이가 용이 되려면 고시(考試)가 외길이었지 청춘을 불사르고 가는 벼랑길 십 년 전쯤 우연히 만난 친구가 고시원에 있다 하기에 면박을 주었지 이제 용이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 허튼 꿈을 버리라고 했지 그믐달처럼 휘어진 그의 등이 마지막 모습 ..

한줄 詩 2022.04.18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이창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저자 이창일은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부끄러운 감정의 원천을 조근조근 파헤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성현들의 가르침도 틈틈히 인용한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부끄럽다는 말과 수치스럽다는 말이 대동소이하지만 수치라는 단어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얼굴을 더 빨갛게 만든다고 할까.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또 노회찬과 박원순도 생각이 났다. 그들은 수치스러움을 죽음과 바꿀 만큼 당신의 인생이 오염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죽음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들의 죽음을 존중한다. 구차한 변명을 하느니 미련 없이, 일본말 좀 쓰면 앗싸리 목숨을 버리는 삶을 택했다. 예전에는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을 봤다. 당일 본방 사수 못하면 나중 유튜브로 꼭 봐야 했던..

네줄 冊 202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