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목주름이거나 목걸이거나 - 나호열

마루안 2022. 4. 18. 21:26

 

 

목주름이거나 목걸이거나 - 나호열

 

 

한평생을 목줄에 묶여 이곳까지 왔다

굴복인지 서툰 깨달음인지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는 슬픔과

아니, 한평생을 질긴 목줄을 끊으려고

이가 닳고 몸이 이지러졌다는 노여움이

내게 목줄을 채운 그를 그립게 한다

끈질긴 추격자를 피해 몸을 부숴버린

바람이 당도한 망명지처럼

목주름은 세월이 내게 준 값나가는 목걸이

아무도 호명하지 않는

천일야화의 주인공이 되어

또 한 줄의 문신을 새기는 죽은 봄이다

 

 

*시집/ 안부/ 밥북

 

 

 

 

 

 

고시원 - 나호열

 


개천의 지렁이가 용이 되려면
고시(考試)가 외길이었지
청춘을 불사르고 가는 벼랑길
십 년 전쯤
우연히 만난 친구가 고시원에 있다 하기에 면박을 주었지
이제 용이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
허튼 꿈을 버리라고 했지
그믐달처럼 휘어진 그의 등이
마지막 모습
언젠가 고시원에 불이 나서
죽은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
개천에서 태어나 하늘로 오르는
용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
한두 평 숨 쉴 수만 있으면 꿈도 꿀 수 있다고
저마다의 고된 하루를 눕히던 고시원
맞다 맞아!
쪽방도 아니고 여인숙도 아니고 합숙소도 아니고 고시원이라니
어차피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치러야 할 엄숙한 시험
꿈으로 불타오르는 용들의 작은 집
온 세상이 한 채의 거대한 고시원
맞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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