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문 이 자리에 - 박노식 새순이 올라오기 전에 꽃부터 걱정하는 마음처럼 조바심은 나를 흔든다 언젠간 오겠지만, 마른 가지를 어루만지며 입김을 불어 넣은 지 세 해가 다 되어도 꽃소식은 없다 꼭 보겠노라 애를 졸이며 종일 골목길을 배회하던 그 시절의 그리움보다 더 큰 불안이 여기에 있다 지나가던 이웃이 '너무 정을 주어도 잔병치레가 많고 결과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지만, 어린 목련 묘목을 심고 해마다 퇴비를 주고 또 하루에도 수십 번 눈길을 주었으니 사람 같으면 질려서 숨이 막히고 괴로웠을 것이다 내가 머문 이 자리에 게으름을 잔뜩 남기고 타인보다 뒤쳐진 한 계절을 누린다 *시집/ 마음 밖의 풍경/ 달아실 복사꽃 아래 서면 - 박노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