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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 산책 - 조온윤

공복 산책 - 조온윤 걸어가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가지 대답을 만나고 싶었지 이봐,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자 하는 거지? 깨달음을 얻고 싶었지만 글쎄, 이곳은 보리수 아래가 아니고 이곳은 사과나무 아래가 아니어서 사과가 내 발밑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허기가 생각을 이길 때 나는 텅 빈 몸을 채우러 외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리에는 다만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제 몸을 끊임없이 마르게 하는 것으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리수 대신 천막으로 그늘을 치고 그 아래 가부좌를 틀고 식도까지 탑을 쌓아 올리는 대식가들이 혁혁대며 먼저 수건을 던질 때까지 고작 허기 따위에 지고 싶지 않은 건가? 링 위에 선 깡마른 복서가 갈비뼈를..

한줄 詩 2022.09.01

비판 받을 권리 - 박용하

비판 받을 권리 - 박용하 나부터 선을 긋고 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는 아직도 안 되는 듣기 일가친척부터 위정자까지 주어 없는 고깃덩어리랑 묻지 마 투표기계까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종교는 말해 뭐하겠는가 유리 국경은 말해 뭐하겠는가 우리는 파편이다 그것도 끼리끼리 파편이다 이젠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 비판하는 자들이 비판받는 걸 더 못 견뎌 한다는 것이다 용기 내 들어야 할 쓴소리가 왔을 때 나는 누구였고 우리는 무엇이었던가 나부터 총을 들고 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요원한 듣기의 힘 비판할 자유가 있듯이 바판받을 자유도 있다 작가는 비판받을 권리도 있다 언어보다 총알이 편리한 이유다 비판하는 힘보다 ..

한줄 詩 2022.08.31

손수레가 할머니를 품고 - 배임호

손수레가 할머니를 품고 - 배임호 칼바람 몰아치는 꼭두새벽이다 구십도 허리 굽은 할머니가 너덜너덜한 손수레에 빈 박스를 차곡차곡 쌓고 어그적어그적 생의 길을 간다 보험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황혼 인생 온종일 품팔이 몫이 2천 원이란다 "자식들은요?"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보며 "즈들 날났데이" 한마디 툭 던지고는 어둠 속을 헤치며 간다 손수레가 할머니를 밀고 간다 저 양식을 구하는 빈자의 꼭두새벽에서 내 어머니를 만난다 *시집/ 우리는 다정히 무르익어 가겠지/ 꿈공장플러스 하나뿐인 명품 - 배임호 가정이건 직장이건 거리마다 다들 적(敵)을 두고 있다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막히는 일이 없어 희열이 넘칠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울할 때나 아무리 둘러봐도 종점에선 고독이 운명인 양 섬으로 서 있는 홀로이..

한줄 詩 2022.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