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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라서 - 이명선

좋은 게 좋은 거라서 - 이명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것을 찾아다닌다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별거 아닌 일에 별개의 일이 되기도 하여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구실이 될 것 같고 내게 휘둘리다 보면 나는 잡혀 온 방향으로 흘러 거울은 표정이 없고 더 살필 것이 없어 초조해지고 오늘의 내가 빛 좋은 개살구처럼 빚 받으러 온 손님처럼 어림없을 것 같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서 나도 모르는 나의 죄까지 수긍하게 된다 외탁의 나는 엄마의 허물보다 더 큰 거울을 뒤집어쓰고 있어 우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울 수 있는 세상에서 오늘을 실컷 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다가 넉살 좋게 앉아 정도껏 살자는 말과 부대끼려는 마음 사이를 오가며 내게 척지고 싶지 않아 엄마의 거울을 뒤로 돌려놓았다 *시집/ 다 끝난..

한줄 詩 2022.09.14

계단 학습법 - 김백형

계단 학습법 - 김백형 계단은 계단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자신이 급경사의 다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 올라가면 숨차게 기도로 쫓아 들어와 무릎 접고 발바닥으로 나가는 내려가면 다급히 발바닥으로 들어와 무릎 굽혀 기도로 빠져나가는 그것을 그는 단계라고 배우며 살아왔다 자신을 세어 보는 사람에게도 몇 계단씩 뛰어넘는 사람에게도 더덜이 없는 공평을 유지하며 남은 길을 가늠케 하는 단호한 얼굴 올라가는 중인지 내려가는 중인지 들키지 않으려는 듯 눈 하나 깜짝 않는 무표정의 직각 무수한 발자국에 멍들고 귀가 멀어도 이 꽉 물고 흘러가지 않으려 지나온 길 접고 풀며 시간을 변주하고 있다 *시집/ 귤/ 걷는사람 옷핀 - 김백형 ​ 국민학교 입학식 날, 가슴팍 손수건을 물고 파닥거리던 물고기가 있었지 깻잎 같은 누나와 아..

한줄 詩 2022.09.13

만나러 가는 길 - 김초혜

만나러 가는 길 - 김초혜 시인은 세상의 모든 울음을 우는 사람이다 억울하게 누명 쓴 이의 억울함도 울고 병들어 아픈 사람의 아픔도 울고 자식 잃은 에미의 울음도 울고 사별의 아픔을 겪는 이의 그리움도 운다 심지어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죄인의 고통도 운다 시인은 우는 사람이다 울음의 기록이 시다 *시집/ 만나러 가는 길/ 서정시학 행복과 불행 - 김초혜 지난날의 행복은 오늘을 불행하게 하고 지난날의 불행은 오늘을 행복하게 한다 장수의 비극 - 김초혜 이제 내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고 있을 것이다 사랑할 힘도 미워할 힘도 모두 삭아서 텅빈 눈으로 하늘만 바라볼 것이다 행복 - 김초혜 아침 해 몸통을 비집고 들어와 내 마음을 간지르네 햇빛 그 귀함에 새삼 취하네

한줄 詩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