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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도 - 고원정

죽은 뒤에도 - 고원정 오랜만에 옛 선배의 묘를 찾아갔더니 그 선산을 중장비로 파헤치고 있었다 이리저리 연결해서 미망인 형수와 이십몇 년만에 통화를 했는데 문중에서 산을 팔았다고 공원묘지로 옮겼다고 했다. 죽은 사람의 새 주소를 받아적었다. 늘 호젓하던 후배 10주기라고 어느 시립공원묘지에 혼자 갔는데 납골당 그 유골단지에 그 부인 이름까지 씌어있었다 4년 전에 세상 떴다 적어놓았다 사진도 독사진에서 신혼여행 부부사진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저렇게들 웃고 있을까? (······) (······) 죽은 뒤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이사도 다니고 늦게 온 사람과 만나기도 하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겠지 우두커니 그 앞에 서 있다가 돌아서는 내 등에 대고 나직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괜찮으냐고 보이지 않는 삶보다 눈에 ..

한줄 詩 2022.09.15

말매미 새집에 들다 - 이윤승

말매미 새집에 들다 - 이윤승 지친 노구를 끌고 와 꽃밭에서 생을 마감한 말매미 한 마리 풍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 들어 살던 감나무 집 아래 풀씨들 찾아와 흰 꽃으로 장식한 아담한 관 속 나무에 붙어 있는 자세로 엎드린 채 누워 있다 평생 걸쳤던 낡은 육신을 벗어던진 후 몇 번의 비가 더 내리고 햇살들 앞다투어 찾아들면 낡은 몸뚱이는 왔던 곳으로 서서히 스며들 것이다 생전에 얼마나 웃고 울었는지 지상에서 보낸 짧은 삶은 따뜻했는지 물끄러미 바스러진 날개를 내려다본다 위로를 전할 상주 없는 관을 내려다보며 짧고 뜨거웠던 노래를 떠올리며 등짝을 덮은, 한때 빛나고 환했을 날개를 생각하며 우주의 세입자가 떠난 감나무 빈방 창가를 한참 동안 바라다보았다 골목을 지나온 바람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시집/..

한줄 詩 2022.09.15

불면의 꿈길 - 김석일

불면의 꿈길 - 김석일 불면의 공백은 늘 사각의 틀을 하고 하얀 색으로 나타난다 생전 부모님 모습이 사각 틀 안에 나타나고 유년의 놀이동산도 청춘의 일그러진 모습도 훗날의 먼 길 떠나는 등 굽은 나의 뒷모습도 액자 안의 사진 같은 형상이다 생인손 같던 사랑과 미움의 모습들이 하얀 화선지 위에 먹물 번지듯 시시각각 온갖 모습으로 다가오듯 스쳐지나간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눈물이 나고, 사각 틀 밖의 세상으로 가고 싶은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누군가를 소리쳐 불러보았건만 대답은커녕 뒤도 돌아보질 않는다 결국, 이 밤도 어젯밤같이 허우적대며 망각의 계단을 또 한 칸 올라간다 *시집/ 울컥하다는 말/ 북인 자고 싶다 - 김석일 설령 깨어나지 못한다 해도 보초 서다 고꾸라져 잠들었던 그런 단잠을, 단잠을 자고 싶..

한줄 詩 20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