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갈대로 사는 법 - 박봉준

마루안 2022. 9. 5. 21:46

 

 

갈대로 사는 법 - 박봉준


호숫가의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갈대를 보면 안다

뒤돌아서서
바람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는 갈대는 고개만 끄덕일 뿐
결코 맞서지 않는다

약자의 생존 방식을 누가 함부로 말하는가

먼저 나서지 말거라
아버지는 나에게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백발이 빛나는 갈대를 보면
이십 리 장에 가셨다가 해거름에 오시는 아버지 같다

그렇게 사셔도
기껏 예순다섯 해밖에 못 사셨다

 

 

*시집/ 단 한 번을 위한 변명/ 상상인

 

 

 

 

 

 

내 편 - 박봉준


식구끼리 편 가른다고
어릴 적 어머니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지금도 그 버릇은 뼛속에 파편처럼 박혀서
기회만 되면 뽀족한 가시를 세웁니다

엎치락뒤치락
새벽에야 끝난 개표방송

우리 편이 졌다고 우울하다는 친구가 꽃은 이미 시들었으니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우리 편이 졌다고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한 남편을 두둔하던 그 여자 다행히 거시기는 같은 편인가 봅니다 우리 편이 이겼다고 신이 난 동창도 술 한잔하자고 전화를 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저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이 봄날 홀씨처럼 떠다닙니다

가슴속에 내 편 네 편
불씨가 있는 한 불치의 병은 꺼지지 않습니다
일찍이 앞을 내다보시는 어머니께서
부지깽이를 드신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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