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면적의 먼지를 털며 - 기혁
생활이 바뀌면 피부가 아프다
환절기처럼 얇고 긴 겉옷 속에서
타인의 손을 탄 한 시절이
부풀어 오른다
열이 난다는 건
어딘가 높낮이가 생겼다는 증거
이별은
서로 다른 기후대를 만들고 각자 살아갈
짐승을 불러모은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코를 킁킁거리며
한때는 인적이라 불리던 체온의
이동 경로를 상상하는 짐승
피부에도 마음이 있을까
무리에서 떨어진 마음은
어떤 야성을 키울까
그리운 사람을 만나면
기분과 날씨가 먼저 살에 맺힌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을 때마다
생활의 등고선을 따라 이어지던 울음도
소매를 걷고서 딴청을 피운다
핏줄과 인연의 가장자리에서 한평생
피부만 문지르던
생식의 지리
마음은 길을 잃은 적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애의 한 면적을 걸치려 한다
*시집/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 도서출판 리메로
동행 - 기혁
가정식 백반을 잘한다는 맛집에 앉아 더운 밥상에
허기를 바짝 붙이고 수저를 듭니다
홀로 앉아 있어도 온기가 있는 일은 아늑하구나,
저마다 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외로움을 감추려는 겸손이 아닐 겁니다
불이 없어도 보글거리는 뚝배기와
시린 손끝을 녹이는 공깃밥의 온기가
있는 힘을 다해 1인분의 세계를 붙들고 있습니다
초년생과 1인분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많군요,
위태롭게 질책 받던 오전의 일상이
김칫국물보다 붉은 얼룩을 남몰래 남깁니다
2인분 같은 1인분의 후한 참견 덕분에
애꿎은 냅킨을 한 움큼씩 뽑아 들기도 했습니다
닦아 낼 수 없는 일들은 또다시 1인분으로 남겠지요?
아무리 욕을 먹어도 허기는 시간에 민감합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씹었던 선배도
음식도 흔적 없이 넘겨야만 합니다
울컥 목이 메입니다 그럴수록 더운 밥상은
얼굴을 감싸 안듯이 자신의 온기 쪽으로 몸을 끌어당깁니다
역시 맛집은 다르군요, 꽁꽁 얼어붙은 가슴께 어디쯤을
가정식으로 어루만져주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급하게 전화를 받으면
모두가 일행인 것처럼 정적이 흐릅니다
홀로 찾아오는 불행은 지나치리만큼 예의가 바릅니다
식당 밖으로 뛰어나간 청년의 자리에
뚜껑만 열어놓은 공깃밥이 모락모락 김을 내뿜습니다
식당 아주머니가 밥상을 물리기 전까지
각자의 밥그릇에도
가득 찬 무언가가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불 - 박상천 (0) | 2022.09.07 |
---|---|
내가 머문 이 자리에 - 박노식 (0) | 2022.09.07 |
갈대로 사는 법 - 박봉준 (0) | 2022.09.05 |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 강회진 (0) | 2022.09.05 |
바깥에 대하여 - 황현중 (0) | 2022.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