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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 박판식

얼마전 출근 길에 지하철을 탔다가 다음 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반대 방향임을 알았다. 아차! 오랜 기간 다녔던 전 직장의 출근길이 몸에서 완전히 빠지지 않은 탓이다. 습관은 이렇게 무섭다. 다행히 다음 역 승강장이 양쪽으로 나뉘지 않고 가운데 있어서 바로 갈아 탈 수 있었다. 몇 분 사이 잠깐의 한숨과 잠시의 안도가 교차했다. 그래도 만원 출근길의 고단함보다 잠깐의 어긋남이 금방 수습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문처럼 늘 삐걱대는 내 인생은 다음 역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늘 괜찮은 시집 하나 언급하련다. 박판식의 시집 이다. 제목에 딱 꽂히기도 했지만 내용이 좋은 시로 가득하다. 온 세계가 그물망처럼 연결 된 인터넷 세상이라 조금만 검색하면 건강 정보든, 재테크 정보든 온갖 정..

네줄 冊 2022.07.07

당신은 미래에서 온 사람 - 하상만

당신은 미래에서 온 사람 - 하상만 노인을 본다 나의 미래를 본다 섬뜩하다 옆에 있는 미래를 보고도 현재는 변화는 게 없다 미래가 후회하는 과거를 현재가 살아가고 있다 사라진 다음 후회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과거에 대해 말한 거지만 미래에 대해 말한 것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서 날아온 사람처럼 아버지가 서 있다 *시집/ 추워서 너희를 불렀다/ 걷는사람 병든 몸은 병든 몸으로 돌아간다 - 하상만 오래 아프면 아픈 몸이 정상이다 병에도 관성이 있어서 약을 쓰면 괜찮아지는 것 같지만 원래대로 돌아간다 고칠 생각 말고 심할 때 약이나 먹으라고 살살 달래 가면서 친구처럼 지내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했다 # 하상만 시인은 경남 마산 출생으로 2005년 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 등이 있다.

한줄 詩 2022.07.07

망각의 소유 - 김영언

망각의 소유 - 김영언 삭막한 도시를 청산하고 공기 맑고 풍경 좋은 전원에서 좀 더 신선하고 낭만적으로 살겠노라 아파트에 비좁게 갇혀 있던 삶을 탈탈탈 불러내어 이삿짐 트럭 한 대에 차곡차곡 쪼그려 앉히다 보니 소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소유자가 아니었던 것들이 베란다며 거실 구석구석에서 절뚝거리며 끌려 나오고 온몸에 먼지를 덧칠한 채 장롱 위에서 뛰어내린다 소유권을 망각하고 있었던 잡동사니들이 달리는 트럭 위에서 구시렁구시렁하더니 다시는 유폐되기 싫다는 듯 잊혀진 옛사랑의 기억을 되살려놓으려는 듯 청량한 바람을 끌어다가 먼지를 닦아내고 수줍은 나무 그늘을 끌어다가 상처를 메운다 더 이상 남루를 이끌고 오지 않으려고 했건만 망각 속에서 반어적으로 출토된 유물들을 망각의 저장고 같은 삶의 액자 속에 옮겨 걸고 ..

한줄 詩 202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