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 박판식

마루안 2022. 7. 7. 19:52

 

 

 

얼마전 출근 길에 지하철을 탔다가 다음 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반대 방향임을 알았다. 아차! 오랜 기간 다녔던 전 직장의 출근길이 몸에서 완전히 빠지지 않은 탓이다.

습관은 이렇게 무섭다. 다행히 다음 역 승강장이 양쪽으로 나뉘지 않고 가운데 있어서 바로 갈아 탈 수 있었다. 몇 분 사이 잠깐의 한숨과 잠시의 안도가 교차했다.


그래도 만원 출근길의 고단함보다 잠깐의 어긋남이 금방 수습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문처럼 늘 삐걱대는 내 인생은 다음 역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늘 괜찮은 시집 하나 언급하련다. 박판식의 시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이다. 제목에 딱 꽂히기도 했지만 내용이 좋은 시로 가득하다.


온 세계가 그물망처럼 연결 된 인터넷 세상이라 조금만 검색하면 건강 정보든, 재테크 정보든 온갖 정보를 앉아서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진짠지 가짠지 여부는 소비하는 사람 몫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몰라서거나,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못 읽지 마음만 먹으면 시집 없이도 얼마든지 시를 읽을 수 있다. 인터넷에는 얼마나 많은 시들이 떠돌고 있는가.


이 시는 인터넷에 없다. 왜? 내가 처음으로 한 자 한 자 타이핑해서 지금 올린 시니까. 시를 옮길 때는 참 조심스럽다. 행여 오타가 생길까 점 하나, 助詞 하나라도 빠뜨린 게 없는지 신중하게 옮긴다.


이것이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시인은 창작의 고통을 안고 밤을 새며 시를 썼을 터,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은 그 시를 단물이 빠질 때까지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미래에서 온 유령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인간이 가장 무섭다

 

*시/ 맨발의 왕자/ 끝 구절

 

 

*나도 알고 있다, 내 인생이 왜 괴로운지를

그것은 나를 사랑하지 못한 내 영혼의 추위

사랑의 냉담한 포즈라는 것을

 

*시/ 버선발에 슬리퍼를 신고/ 일부

 

 

*나는 내가 노래한다 믿었으나

사람들은 내게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만을 들었다

 

*시/ 때가 되었다/ 일부

 


시는 시인이 썼지만 정작 임자는 시를 읽는 독자다. 나같은 활자 소비자가 많을 때 시인도 살고 문학도 산다. 이 시집에 실린 좋은 시 하나 올린다.


이 독후감을 쓰도록 유발한 시다. 당연 저작권은 시인에게 있지만 오늘 이 시는 내 것이다. 왜? 나는 당신의 시를 표절했지만 당신은 내 마음을 표절했으니까.


하늘의 마음 - 박판식



커피를 코트에 쏟아서 세탁비를 물어주어 얼마나 다행인가
저녁이 와서, 원하는 것을 얻어오지 못해서
또 얼마나 다행인가

길가의 갈대를 꺾지 않아서, 부모를 내가 고르지 않아서
아들이 내 말을 안 들어서 또 얼마나 다행인가

시장 고무 대야의 자라를 사서 풀어주지 않아서
사격에 소질이 없어서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금값이 비쌀 때 금니를 해 넣어서 또 얼마나 다행인가

벚꽃놀이를 못해서
죽을 만큼 아팠다가 나았다가 다시 아파서
직장을 잃어서, 신년운세를 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또 용서받을 잘못이 있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생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