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소유 - 김영언
삭막한 도시를 청산하고
공기 맑고 풍경 좋은 전원에서
좀 더 신선하고 낭만적으로 살겠노라
아파트에 비좁게 갇혀 있던 삶을 탈탈탈 불러내어
이삿짐 트럭 한 대에 차곡차곡 쪼그려 앉히다 보니
소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소유자가 아니었던 것들이
베란다며 거실 구석구석에서 절뚝거리며 끌려 나오고
온몸에 먼지를 덧칠한 채 장롱 위에서 뛰어내린다
소유권을 망각하고 있었던 잡동사니들이
달리는 트럭 위에서 구시렁구시렁하더니
다시는 유폐되기 싫다는 듯
잊혀진 옛사랑의 기억을 되살려놓으려는 듯
청량한 바람을 끌어다가 먼지를 닦아내고
수줍은 나무 그늘을 끌어다가 상처를 메운다
더 이상 남루를 이끌고 오지 않으려고 했건만
망각 속에서 반어적으로 출토된 유물들을
망각의 저장고 같은 삶의 액자 속에 옮겨 걸고 말았다
망각도 소유다
*시집/ 나이테의 무게/ 도서출판 b
까치집 - 김영언
더 이상 쫓겨갈 곳도 없는
송림동 수도국산 꼭대기
가파른 비탈에 판자 조각들로 누덕누덕 기운
삐걱대는 계단처럼 위태롭게 기울어 가던 집
현대시장 깡마당 질척한 노점 좌판에서
어머니가 물어오는 콩나물 부스러기 같은 먹이만 기다리다가
산 아래로 내려가 공사판을 전전하며
깨진 벽돌 조각 더미에 발부리 채이며 먹이를 찾게 될 때까지
할아버지의 오래된 기침소리처럼 덜컹대던 단칸 미닫이 문을 여미며
살이 맞닿아도 밀쳐 내지 못하고 비좁게 웅크리던 둥지 같던 집
낮은 곳에 안착할 날을 꿈꾸며 헤맨 지
수십 년 연습 끝에도 아직 먹이 찾기가 미숙한 그는
언제부턴가 산 중턱 고목 꼭대기 까치집을 불안하게 바라보다가
시장 모퉁이 쓰레기더미를 헤집고 있는
땅바닥의 까치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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