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망각의 소유 - 김영언

마루안 2022. 7. 7. 19:33

 

 

망각의 소유 - 김영언

 

 

삭막한 도시를 청산하고

공기 맑고 풍경 좋은 전원에서

좀 더 신선하고 낭만적으로 살겠노라

 

아파트에 비좁게 갇혀 있던 삶을 탈탈탈 불러내어

이삿짐 트럭 한 대에 차곡차곡 쪼그려 앉히다 보니

소유하고 있었으면서도 소유자가 아니었던 것들이

베란다며 거실 구석구석에서 절뚝거리며 끌려 나오고

온몸에 먼지를 덧칠한 채 장롱 위에서 뛰어내린다

 

소유권을 망각하고 있었던 잡동사니들이

달리는 트럭 위에서 구시렁구시렁하더니

다시는 유폐되기 싫다는 듯

잊혀진 옛사랑의 기억을 되살려놓으려는 듯

청량한 바람을 끌어다가 먼지를 닦아내고

수줍은 나무 그늘을 끌어다가 상처를 메운다

 

더 이상 남루를 이끌고 오지 않으려고 했건만

망각 속에서 반어적으로 출토된 유물들을

망각의 저장고 같은 삶의 액자 속에 옮겨 걸고 말았다

망각도 소유다

 

 

*시집/ 나이테의 무게/ 도서출판 b

 

 

 

 

 

 

까치집 - 김영언

 

 

더 이상 쫓겨갈 곳도 없는

송림동 수도국산 꼭대기

가파른 비탈에 판자 조각들로 누덕누덕 기운

삐걱대는 계단처럼 위태롭게 기울어 가던 집

 

현대시장 깡마당 질척한 노점 좌판에서

어머니가 물어오는 콩나물 부스러기 같은 먹이만 기다리다가

산 아래로 내려가 공사판을 전전하며

깨진 벽돌 조각 더미에 발부리 채이며 먹이를 찾게 될 때까지

할아버지의 오래된 기침소리처럼 덜컹대던 단칸 미닫이 문을 여미며

살이 맞닿아도 밀쳐 내지 못하고 비좁게 웅크리던 둥지 같던 집

 

낮은 곳에 안착할 날을 꿈꾸며 헤맨 지

수십 년 연습 끝에도 아직 먹이 찾기가 미숙한 그는

언제부턴가 산 중턱 고목 꼭대기 까치집을 불안하게 바라보다가

시장 모퉁이 쓰레기더미를 헤집고 있는

땅바닥의 까치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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