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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자는 평등하다 - 소동호 사진전

그냥 지나칠 뻔한 전시회를 보았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전시회도 만날 인연이면 볼 기회가 주어지는가 보다. 이 전시가 그렇다. 인사동 전시장 몇 군데를 돌면 보통 종로 쪽으로 향한다. 오늘 점심을 먹기 위해 헌법재판소 쪽으로 이동하다 이 전시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전시 포스터가 안내를 했다는 게 맞겠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홀딱 빠졌다. 소동호 작가는 지난 5년간 오직 의자만을 찍었다. 서울 길거리 의자 프로젝트다. 이 작가가 마음에 든 것은 그가 찍은 의자가 한결같이 낡고 초라하다는 거다. 전시장에 걸린 사진 숫자는 거의 400여 장에 가깝다. 전시 공간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옆서 크기의 사진을 촘촘하게 배치를 했다.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내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세상을 나왔는지는..

여덟 通 2022.07.16

거짓말 이력서 - 성은주

거짓말 이력서 - 성은주 최초의 거짓말은 여섯 살 놀이동산에서 시작됐다 엄마는 내 손에 풍선 끈을 쥐여주었다 놓치지 마 정말 먼 곳으로 사라지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풍선 끈을 놓았다 엄마 원피스 자락을 붙들고 혼날까 봐 더 크게 울며 놓친 척했다 캉캉춤을 추던 무용수가 내 최초의 거짓말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 후로 종종 거짓말할 때마다 속치마 들썩이듯 넘어지는 꿈을 자주 꿨다 * 함께 차 타고 커브를 돌 때 연인의 머리카락도 길어졌다 우리의 교집합에 또 다른 동그라미가 빗금을 쳤다 당신은 너무 아래에 있어요 계속 그어지던 선 지우는 방법을 몰랐다 긴 통로에서 과일 껍질처럼 앉아 있는 당신을 내가 지워 놓고 당신이 날 떠났다고 슬픈 척했다 갓 지은 쌀밥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올 때 금방 식을 거라 생각했다 매..

한줄 詩 2022.07.12

내 눈치도 좀 보고 살 걸 그랬다 - 이명선

내 눈치도 좀 보고 살 걸 그랬다 - 이명선 마음이 마음 같지 않아 천천히 병을 얻었다 생각날 때 밥을 먹고 너와 함께 골목을 걸어 봐도 내 골목은 끝으로 갈수록 말수가 적어졌다 아무 날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사랑을 이어 불렀지만 엄마의 딸이라 말 못 하는 헛꿈만 꾸곤 했다 나를 앞질러 가는 세상에 적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림없는 이야기를 어림잡아 보려는 사람처럼 한 발 뒤로 물러나 나 같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무 날은 아무렇지 않길 바라며 겪지 말아야 할 일을 일찍 겪은 사람과 겪을 일을 먼저 겪은 사람에게도 남은 미래가 있어 나를 보면 조바심이 난다는 엄마의 말을 수긍하기로 했다 이 골목에 비가 그치면 반짝 낮더위가 시작되겠지만 늘 그렇게 무엇엔가 홀려 왔던 것처럼 나를 넘겨짚다가 골목의 끝과 마..

한줄 詩 202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