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 함명춘 일몰 직전이다 힘차게 뛰던 파도의 맥박이 조금씩 잦아들고 잠시 숨을 고르는 새 떼들이 허공에 못이 되어 박힌 채 지나왔던 길을 가만히 되돌아본다 참 탈도 많았던 길이었지 삶은 누구나 미처 다 읽지 못한 아픔의 책 한 권씩은 갖고 있는 거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각자의 하루에서 돌아온 물결들 하나둘씩 세상에서 가장한 편안한 잠을 준비하고 떠난 줄 알았던 적막이 그리움을 향해 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나뭇잎들을 어루만지며 수평선을 넘어온다 파도의 숨이 뚝 하고 끊긴다 일몰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부터 초심처럼 입술을 깨물며 별이 뜨고 아무것도, 더 이상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 다짐하며 바람이 분다 이제 밑도 끝도 없는 죄책감의 핀셋에 꽂혀 곤충처럼 버둥거리는 나를 그만 용서해 줘야지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