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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 함명춘

일몰 - 함명춘 일몰 직전이다 힘차게 뛰던 파도의 맥박이 조금씩 잦아들고 잠시 숨을 고르는 새 떼들이 허공에 못이 되어 박힌 채 지나왔던 길을 가만히 되돌아본다 참 탈도 많았던 길이었지 삶은 누구나 미처 다 읽지 못한 아픔의 책 한 권씩은 갖고 있는 거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각자의 하루에서 돌아온 물결들 하나둘씩 세상에서 가장한 편안한 잠을 준비하고 떠난 줄 알았던 적막이 그리움을 향해 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나뭇잎들을 어루만지며 수평선을 넘어온다 파도의 숨이 뚝 하고 끊긴다 일몰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부터 초심처럼 입술을 깨물며 별이 뜨고 아무것도, 더 이상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 다짐하며 바람이 분다 이제 밑도 끝도 없는 죄책감의 핀셋에 꽂혀 곤충처럼 버둥거리는 나를 그만 용서해 줘야지 이미..

한줄 詩 2021.02.18

가장 먼 길 - 이산하

가장 먼 길 - 이산하 ​ 숟가락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 같고 젓가락은 마주 보는 두 개의 백척간두 같다. 숟가락이 밥 속으로 수직으로 푹 찔러 들어가 바닥을 긁고 나면 비로소 젓가락은 수평을 이룬다. 눈물이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내디딘다. 나는 흩어진 밥알처럼 바닥에 바싹 붙은 채 숟가락과 밥그릇 사이가 가장 먼 길임을 깨닫는다. *시집/ 악의 평범성/ 창비 바닥 - 이산하 ​ 누군가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가봤다고 말할 때마다 누군가 인생의 바닥의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고 말할 때마다 오래전 두 번이나 투신자살에 실패했다가 수중 인명구조원으로 변신한 어느 목수의 얘기가 떠오른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이 강에 투신자살하면 거의 '99대 1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시신의 99%는 강물 속으로 가..

한줄 詩 2021.02.18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 황세원

코로나 직격탄으로 소득이 준 사람이 여럿인 세상이다. 안 그래도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불황이고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징글징글한 바이러스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나는 비교적 선방이다. 소득이 약간 줄긴 했어도 돈 쓸 일이 줄어든 탓에 소득 감소를 못 느낀다. 길을 가다 보면 사은품 가방을 든 아줌마들이 투자설명회 장소를 안내할 때가 있다. 공짜 좋아하다 코 꿰기 싫어 사양하고 지나치지만 길 가 작은 탁자에 놓인 일회용 물티슈가 붙은 전단지를 집어 온 적은 있다. 오피스텔이 들어서는데 수익이 쏠쏠한 투자처란다. 삐딱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수익이 좋은 알짜 투자라면 모르는 사람에게 권할 게 아니라 형제자매나 친지들에게 권하지 일면식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기회를 주냐는 거다. ..

네줄 冊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