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이 훨씬 넘도록 내가 아는 시인은 교과서에서 배운 시인이 전부였다. 읽은 시라고는 윤동주와 한용운, 서정주의 시였다. 군대에서 만난 선배 덕에 시인의 영역이 넓어졌다. 그때 선배가 읽던 황동규, 오규원, 황지우 시집을 처음 접했다. 감동은 별로 없었다. 그냥 스스로 잘난 맛에 사는 시인들의 지적 허영심 정도로 읽었다. 그 선임과 나는 성격은 이질적이나 어딘가 맞는 구석이 있었던지 늘 보초도 같이 서면서 곧잘 어울렸다. 진중하지 못하고 팔랑개비처럼 가벼운 나에 비해 그는 가슴 속에 돌덩이 하나 담고 있는 듯 언제나 고뇌에 찬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그때 감염된 시 바이러스가 지금의 시 읽기에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당시에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였던 시였지만 내 몸 어디쯤에 숙주로 남아 있다 훗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