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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 든다 - 허림

내면에 든다 - 허림 삼 년 전쯤인가 카드 돌려막기로 한 달 한 달 근근이 살아내고 있을 때 그 밑돌 빼는 일마저 막히고 셋방 빼달라는 통첩을 들었을 때 내면에 사는 그에게 문자 넣은 적 있다 그 말이 옹이졌는지 내 창고 지으려는 터에 오막 지으면 들어와 살래나? 묻길래 물론이지 여부가 있나 그 후, 생의 오막에 드는 날이면 개똥벌레 날아 길이 환했다 *시집/ 엄마 냄새/ 달아실 첩첩 - 허림 내면이라는 곳은 내면일 뿐 광원이나 명지리 달둔 월둔 살둔 사월평 원당 일어서기 같은 이름들과 큰한이 작은한이 경천 문암 절에 가덕 같은 골짜기에도 바람은 불어오고 눈이 내렸다 하면 한 길씩 빠져 꺽지나 텡가리처럼 터살이 하는 곳 살다보면 대추나무 연실 걸 듯 서로 사는 집들이며 얼굴이며 말씨며 말투도 닮고 입맛까..

한줄 詩 2021.02.16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 조수경

작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드디어 읽었다. 집콕을 한 설날 연휴 덕이다. 소설을 거의 안 읽는 편인데도 이 소설은 발간 소식을 듣고 바로 목록에 올렸다. 소제가 조력자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안락사를 적극 지지한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느낄 수 없을 때 안락사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서우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학교를 자퇴하고 방안에 갖혀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말문을 닫아 버렸는데 오직 엄마와만 최소한의 소통을 한다. 그것도 휴대폰 문자로만이다. 아버지도 자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더욱 방안에서 나오기를 거부한다. 그가 매일 탐색하는 일은 어떻게 죽을까이다. 드디어 한국에도 죽음을 도와주는 센터가 생겼다. 이제는 안락사를 원해 스위스까지 ..

네줄 冊 2021.02.16

슬픔의 알고리즘 - 정이경

슬픔의 알고리즘 - 정이경 여러 날 집을 비운 적 있다 하루에 한 번은 짧은 햇살이 작은 창에 머물고 바람이 몇 차례 드나들기도 했을 테지만 자른 무를 담아 두었던 주방 창문턱 유리그릇 물은 바싹 말랐고 보라색 무꽃을 피워낸 꽃대의 목은 꺾여 있었다 인기척 없는 집에서 어쩌면 스스로 사물이 되기로 하였는진 모르나 한동안은 혼자서라도 오롯이 살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생명이라는 그 가녀린 목숨을 붙들고 오래 아팠던,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남동생이 하늘로 갔다는 지인이 전한 부음 남은 가족들이 '있고, 없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걱정과 함께 떨어져 살지만 건강한 나의 남동생이 오버랩되면서 수척해진 낯빛의 그녀를 미안하게 껴안는다 술잔들이 비워지고 식사를 끝내는 사이에도 어깨며 등 전체가 흐느끼는 장례식장 ..

한줄 詩 202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