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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어제의 지도를 허물면서 간다 - 신표균

낙타는 어제의 지도를 허물면서 간다 - 신표균 나침반이 가리키지 못하는 사막의 길을 내비게이션은 손짓할 수 있을까 목마른 낙타 한 마리 오아시스 찾아 사막 속을 간다 눈썹에 매달리는 모래바람 마른 울음으로 헤치며 발걸음 다시 내딛지만 모래 속에 파묻힌 길이 어디로 닿아있는지 돌아갈 길 막막한 길 위에 서서 길을 묻는다 날개 부딪히는 일 없을 철새 떼가 날아가는 길 없는 그곳이나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눈엔 지도가 없다 *시집/ 일곱 번씩 일곱 번의 오늘/ 천년의시작 자정의 종소리는 종종 징징거린다 - 신표균 둥지도 무덤도 만들지 않는 눈먼 떠돌이 새들 동물원 안에 갇힌 매의 노란 눈에 놀라 검은 나비처럼 내 과거를 매장해 놓은 언덕 위를 날아다닌다 틀니 달그락거리는 소리 잦아든 귓속에서 자라는 침묵 아버..

한줄 詩 2021.02.21

건너 간다 - 이인휘

읽을 책은 언젠가는 읽게 되는가. 드물지만 그렇다. 3년 전부터 읽겠다고 찜해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집콕을 해야만 했던 설날 연휴 덕분이다. 이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맘 먹고 이인휘 소설을 연이어 읽었다. 소설을 잘 안 읽기에 이것도 드문 일이다. 워낙 파란만장한 날들을 제압하며 살아왔기 때문인가. 웬만한 이야기는 다 시시하다. 이인휘 소설 다섯 권을 호떡 포개듯 책상 모서리에 쌓아 놓고 보니 읽기 전부터 배가 불렀다. . . , , 그리고 얼마 전에 나온 신작 이다. 폐허를 보다는 경어체 소설이라 몇 페이지 읽다가 일찌감치 접었다. 나는 희안하게도 경어체 문장을 읽지 못한다. 참으며 읽는다 해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인휘 소설은 미사여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네줄 冊 2021.02.18

까다로운 방문객 - 김점용

까다로운 방문객 - 김점용 묘지의 저녁이다 서둘러 청소를 할 시간 단청 꽃이 다 진 크고 낡은 집을 깨끗이 쓸고 또 닦아야 한다 어두워지면 발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집 오늘은 특별히 세 자매가 온다네 큰언니는 팔자를 그리며 나란한 무덤 두 개를 함께 돌자 그러고 둘째는 건넌방으로 사주를 보러 가자 자꾸 조르겠지 막내는 철없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거야 저... 저기요, 당신 신발이 없어졌어요 찾아주세요 무엇이 잘못됐는지 밤늦도록 불은 켜지지 않고 혼자 빈 구석방을 오래오래 문지르면 사라진 꽃신들이 고요히 돋아나지 살아 있는 듯 살아 있는 듯 *시집/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 걷는사람 비, 구름의 장화 - 김점용 밖에 좀 보거라 어젯밤에 너가부지가 마른 솔갱이를 한 짐 지고 안 왔드나 엊그제 커다..

한줄 詩 2021.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