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pin - Funeral March # 그 분의 삶을 존경해서 가슴 속에 담고 있었던 분이 세상을 떠났다. 날마다 축복 받은 새날이라 여기며 살기에 애도는 짧아도 깊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장례식이 끝나면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마음이 울적해서 어제 오늘 틈 날 때마다 이곡을 들었다. 피아노의 거장 이스트반 체켈리(Istvan Szekely)의 연주다. 1960년에 태어난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그가 연주한 명반들이 즐비하나 나는 오래전에 연주한 이곡이 가장 좋다. 두줄 音 2021.02.17
시간을 굽다 - 이강산 시간을 굽다 - 이강산 속병 덕분에 방 한 칸 얻어 떠나와 맵고 짠 욕망과 인연은 그만 끓이겠다며 잠근 불판 위에 시계를 올려놓고 깜박 침묵의 이불에 눕다 깨어보니 두 시 반이 아홉 시 반으로 익어버렸다 낮이 까맣게 타버렸다 방 가득, 공복의 마음 가득 시간의 누룽지 냄새가 매캐하다 타다 만 모퉁이 시간을 마저 굽고 긁어낸 누룽지가 지장암 석탑이다 백 년쯤 홀로 견딜 만하겠다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 천년의시작 멍게의 방 - 이강산 -살아있는 멍게 있습니다 4차선 횡단보도 곁, 깡마른 멍게 장수 사내의 목소리가 금방 구워낸 고구마 속처럼 뜨겁다 우수(雨水)의 밤이 염천이다 남도에서 예까지 맨발로 걸어온 듯 저 붉은 발가락들, 상처들, 모닥불처럼 끌어안고 견디는 객지의 하룻밤 저 횡단보도란 살아있는 호.. 한줄 詩 2021.02.17
사이 - 박구경 사이 - 박구경 들판 이쪽 저쪽으로 미루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잦은 기침으로 이파리 한두 개를 떨구며 겨우 서 있다 곧 거칠고 쓸쓸한 저녁 해가 곰골 뒤로 스러지고 말 것이다 지난 겨울 눈이 어깨에 쌓인 밤 눈썹에 쌓인 밤 떡국을 사러 나선 길에 치매로 세상을 마쳤다는 길갖집 소식을 듣고 전봇대처럼 박혀버린 들판 저쪽에서 새까만 철골 몇 개가 바람 소리를 치며 떨고 있다 철골 위에 눈썹이 앉아 있다 날개를 펴다 만 새 한마리가 앉아 있다 느닺없는 슬픔으로 오히려 내가 불쌍해지는 들판이다 *시집/ 외딴 저 집은 둥글다/ 실천문학사 도시락 - 박구경 이 눈물의 도시락을 간곡하게도 전언이니 다시 전하기를 납작 엎드린 길 너머론 구름이 어지럽게 흘러가고 바람은 멈추어 시커먼 나무 그림자 속에 있었다고 한다 .. 한줄 詩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