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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버릇 - 이명선 시집

시를 읽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첫 시부터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집이 넘쳐 나는 시대에 이런 시라면 얼마든지 읽어줄 수 있을 텐데,, 은 이명선의 첫 시집이다. 누구든 그러겠지만 첫 시집을 낸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두근거릴 것인가. 시집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문장 완성하기 위해 참으로 긴 날들을 지새웠을 것이다. 싯구 곳곳에서 그걸 저절로 느끼게 했다.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부러움과 함께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내가 시를 쓴 적은 없지만 참 오랜 기간 시를 읽었다. 해서 어떤 시집이든 몇 줄 읽으면 바로 느낌이 온다. 시를 잘 쓰는지, 억지로 쥐어 짰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시인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 물론 틀린 예감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한 ..

네줄 冊 2022.07.19

실업의 무게 - 서화성

실업의 무게 - 서화성 어제는 말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하늘에서 햇볕이 쏟아진 날 윤슬을 본 지 오래다 식탁의 거리는 급여일과 좁혀지지 않았으며 식탁에서 말의 간격보다 멀어져 있었다 며칠째 콩나물국과 말라버린 콩나물무침이 전부였고 김이 빠진 쉰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다 탈색이 된 회색 작업복은 일용의 본분을 다했는지 소금꽃이 피어 있었다 한때 통장 서너 개가 배불러 있던 시절, 하루걸러 밥 먹자던 사람은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나서 떠나기 시작했다 돌탑처럼 쌓여 있는 이빨 빠진 그릇들 꾸역꾸역 헛배에 두꺼운 벽지를 바르고 있었다 졸음이 밀려오는 시간에 오래된 빵집에서 허기가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해남부선을 타면 내가 두고 온 바다에 갈 수 있을까 실어증을 앓는 사람처럼 바다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주절주절 ..

한줄 詩 2022.07.18

사막 - 신동호

사막 - 신동호 서편으로 가는 동안 이별이 다가온다 사막은 깊고 멀어야 한다 별이 내려 작은 모래와 살을 맞대고 지나온 기억들은 반짝인다 부르카가 흔들리지 않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느린 걸음 내가 낙타였을 때, 사막의 밤은 우주 저 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라비아의 공주는 앞으로 뒤로 내 걸음의 리듬을 맞춰주었다 초승달 같은 눈을 만나면 지금도 나는 허리가 아프다 저녁을 향해 걷는 동안 나는 늘 모래처럼 작아졌다 모래 언덕이 수세기를 건너왔으나 지금도 모스크로 총총, 멀어져가는 사랑 모든 신들은 사막에 산다 목마른 자들만이 신들을 추억한다 숨을 곳이 없는 자들만이 죽음을 마주한다 심연이 이내 신들이 되곤 했던 그곳 걸음들이 깊은 발자국만큼 겸솜해지곤 했던 사막 끝, 그곳 어디 *시집/ 그림자를 가지..

한줄 詩 202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