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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런 거라면 - 권지영

사랑이 그런 거라면 - 권지영 날이 선 당신의 말들은 내가 떠나기를 바라는 건가요 술에 취한 당신의 손은 내가 떠날까 두려운 건가요 사랑이 그런 거라면 나는 얼마나 더 모른 체 견뎌내야 하나요 서로에게 하는 말들이 깨진 거울이 되고도 어디까지 당신을 바라보고 어디까지 나를 내보내야 하나요 사랑이 그런 거라면 나는 얼마나 더 바보가 되어야 하나요 먼 데서 내려오는 눈송이들이 창밖으로 내민 손 위에서 쉬 사라져가네요 어쩌지 못하고 가는 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얼마나 더 사라져야 하나요 사랑이 그런 거라면 우리는 얼마나 더 고독해져야 하나요 *시집/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달아실 이별의 방정식 - 권지영 그와의 세계에서 안녕이라 했다 행복하세요 하나의 인연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 같은 말 대답은 서성이다 흘렀..

한줄 詩 2021.03.01

상흔 - 이철경

상흔 - 이철경 오래전 몽둥이로 서너 시간 넘게 죽음의 문턱까지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다 높다란 미루나무가 픽픽 쓰러지고 자갈이 바위로 변하며 몸이 개미만 해지던 순간, K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 강물로 뛰어들다 가라앉던 기억이 있다 실신한 채 물가로 끌려나와 한참을 방치됐다 머리는 여러 곳 터져서 피가 낭자하고 뙤약볕에 달궈진 자갈밭에 흘러나온 피가 말라 가던 시간 누군가 신고로 강 건너 경찰이 오고 왁자지껄한 순간 깨어났다 다시 정신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강가에서 영문도 모른 채, 무자비한 폭력에 팔이 부러지고 뇌진탕에 피를 많이 흘려 사흘 밤낮을 토하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지구가 빙빙 돌다 잠이 들면 멈추던 그때, 겨우 살아나 훗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원생 출신 외부인 K는 삼청교육대..

한줄 詩 2021.03.01

가난의 문법 - 소준철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한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 이야기가 훗날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쓸쓸하게 읽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단정했던 일이 빗나간 적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을 볼 때도 어쩌다 삐끗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공연한 걱정이 아니라 누구든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늘 겸손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이다. 내가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다 갈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운 좋게 건강한 몸이고 가난 때문에 돈을 꾸러 다닐 정도는 아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를 해본 적도 없다. 미련하게 오직 월급 받아 적금 넣는..

네줄 冊 202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