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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떠나지 않는 길 - 김윤배

아무도 떠나지 않는 길 - 김윤배 화사한 마음들은 어디론지 떠난다 길이 안개 속으로 휘고 상처 입은 사람들 마음이 철길에 물든다 떠나는 날의 슬픔보다 돌아오는 날의 통곡이 하산 길을 흐려놓을 걸 알아 아주 먼 여행 중인 혼령들, 몸에서 몸으로 하는 여행을 꿈꾼다 세상의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시작되는 여행은 몸에서 몸으로 가는 여정이었고 몸은 지옥이었던 생의 의미를 놓고 숙려를 연장하지 않는다 사흘, 숙려기간은 지났다 숙려 장소는 냉동실이었다 십 년째 숙려 중인 젊은이는 사흘의 숙려가 부럽다 사흘 동안에도 꽃이 피고 철새가 돌아오고 아이가 태어나고 노동자가 벨트에 끼어 죽고 고공시위가 계속되고 사막은 어느 곳에서나 시작된다 함께 가기로 한 고비였다 사막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 초원을 달려나가는 여인, 양의 ..

한줄 詩 2021.02.28

가벼운 하루 - 김영희

가벼운 하루 - 김영희 오늘을 하루씩 늘려가는 것이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커피 한 잔으로 잠 부스러기를 털어낸다 어느 작가의 생각을 몇 장 읽는다 무언가를 한 줄 써보려다 의미에 걸려 그냥 눕는다 한나절을 그냥 보내버린다 하릴없이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문을 연다 세상이 눈부셔 다시 문을 닫는다 오후의 등뼈는 앉아서 졸기 참 좋은 구조다 무언가를 덜어내려고 머리가 기울어진다 항아리 주둥이처럼, 입을 벌리고 졸아도 쏟아내지 못한 생각들이 차오른다 그냥 한 줄 써본다 이순 고개를 넘는 길은 카카오 톡의 알림 음처럼 바쁠 일도 없다 빛나는 일은 빛나는 사람들이 빛내고 있다 그리하여 가벼운 하루를 하루씩 늘려가는 것이다 *시집/ 여름 나기를 이야기하는 동안/ 달아실 폐지 - 김영희 관절 마디를 착착 접으며 한..

한줄 詩 2021.02.28

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 김대호

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 김대호 아무리 자세히 봐도 바닥에 있는 것은 계산이 안 된다 작은 곤충의 세계 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바닥인의 사정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매 단추의 누추 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매주 로또를 사는 일용직의 낡은 저녁 아무래도 계산할 수 없다 더하면 마이너스 통장이 나오고 빼면 절벽이 나오는 계산법 이 악랄한 계산법은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지독하다는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춘 바닥은 없고 운명을 긍정하는 바닥도 본 적 없다 이 바닥은 다국적으로 평수가 넓어서 난민이 몰려든다 더럽고 누추한 것들이 아무렇게나 모여서 아름다운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어느 날 이런 장면을 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울었다 먹다 만 밥그릇이 식어 있었다 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한줄 詩 202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