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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감옥 - 여태천

지상의 감옥 - 여태천 공기가 달라졌다며 사람들이 투덜대기 시작했다. 하얀 마스크의 사람이 뿌연 길 저편으로 부리나케 뛰어간다. 며칠 전 한 사람은 옥상으로 전광판으로 타워크레인 위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듯이 그래야 숨을 쉴 수 있다는 듯이 땅을 벗어나 하늘로 올라갔다. 아무도 안 보는 가난한 하늘 무지개는 뜨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양철지붕을 식혀 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격앙하지도 울부짖지도 않는다. 부산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어색한 몸짓으로 서로를 흉내를 낸다. 때가 되면 불이 켜졌다 다시 꺼졌다 반복되는 풍경들 속으로 똑같은 모양의 얼굴들이 보인다. 여긴 마치 감옥 같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나같이 외롭다는 표정이다. *시집/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

한줄 詩 2021.03.31

맹세 - 김옥종

맹세 - 김옥종 아즉 애 늙은이는 길을 따라 나서지 못해 갈매기 울음소리로 네가 등진 이승의 서쪽 하늘에 대못 박아 흘린 매화꽃 노을에, 한참을 뒹굴다가 술은 일찍 동이 나고 눈물샘은 닳아져 버렸으니 뉘 있어 너와 함께 인어바위 건너 삼학도로 돌아갈 것이냐 구 터미널 미로스낵 한 켠에 마주앉아 소주병에 맥소롱 타 마시다가 밥태기꽃 흐드러지는 사월에 덤장 들춰 잡아온 보리숭어 건정 찌고 갑오징어 데쳐서 소풍가고 싶은 날 맞닿은 살 향기로도 부족해 남의 살 한 점 물어뜯고 싶어 데쳐낸 정소와 복어 쑥국에 통음 하다가 햐얀 꽃비 내리는 비탈길에서 브레이크 없는 생 앞에 게워 내었다 다시는 왔던 길을 취기 없이 돌아가지 않으련다 다시는, 엎어졌던 꽃길 위에서 일어나지 않으련다 *시집/ 민어의 노래/ 휴먼앤북스 ..

한줄 詩 2021.03.31

달을 뽑았다 - 정선희

달을 뽑았다 - 정선희 타로카드를 뒤집는다 생각이 많아서 달이 되었군요 길들여진 늑대와 길들지 않은 개가 달을 향해 짖고 있다 달빛에 이끌려 가재 한 마리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오늘은 초승달이 되었다가 내일은 보름달이 되었다가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잠이 오지 않아요 어떻게 없던 일이 될 수 있나요 이미 두 손이 피투성인데 끄덕임과 악수 사이를 오가며 충혈과 소름의 차이를 이해한다 내 머릿속에 뜬 달이 자라는 속도로 시소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운다 패를 뒤집는다 퀭한 눈동자가 달처럼 어둠 속에 박혀있다 나는 지금 하현으로 기우는 중이다 *시집/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상상인 저, 붓다 - 정선희 자는 건가 죽은 건가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 표정이 뻥 뚫린 사람, 고개를 절레절..

한줄 詩 202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