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그리운 꿈 - 서상만

그리운 꿈 - 서상만 봄이면 대각댁(大覺宅) 마당, 누런 보릿대 타는 냄새 천지를 덮어 더 배고팠던 날 꿈에서까지 따라다닌 그 가난 이제는 살 만도 한데 왜 울 어머니 꿈마다 저러실까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촛불 켜 손이 닳도록 빌고 비는 어머니 모습을 새벽꿈에 또 보았다 이승과 저승이 멀긴 먼 모양 아직도 이승 형편을 자상하게 모르시고 애태우신다 "어머니 이제 그만 시름 놓으세요!" "아니다 아니다" 어머니는 정화수 앞에 두 손을 모아 빈다 별이 다 질 때까지 *시집/ 월계동 풀/ 책만드는집 낙화심서(落花心書) - 서상만 아, 이렇게 지는구나 꽃은 지는 그 찰나에 자신을 알았을까 고백하건대 그간 참 잘 살았다 꽃이었던 한때 난 누구에게 그토록 황홀했고 누구에게 그토록 그렁그렁한 눈물이었나

한줄 詩 2021.04.11

우는 냉장고 - 윤석정

우는 냉장고 - 윤석정 ​ 비 그치고 안개가 이불처럼 펼쳐진 새벽 젖은 나무들이 게워낸 꽃봉오리는 이역만리에서 달려온 저번 생들의 발바닥 이번 생을 살고자 저번 생이 딱 한 번 꽃신 신고 북쪽으로 행군할 채비를 했고 때마침 비는 나무의 발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겨우 목숨만 챙겨 왔다 내 마음에서 사는 것들은 안개보다 더 희뿌옇고 죽음에 얼룩진 발바닥을 가졌다 발바닥을 디뎌야 일어날 수 있듯 나는 죽어야 살아나는 것들을 생각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갓던 개구리들이 개울가로 기어 나와 알을 낳고 밤낮으로 울었다 우는 소리를 엿듣다가 방문을 닫으면 냉장고가 방구석에 웅크린 채 쉴 새 없이 울었다 마음을 열어젖히고 다 내어 준 서러운 목숨들 나는 내 마음에서 죽은 것들을 생각했다 *시집/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한줄 詩 2021.04.10

돌아오지 않는 날 - 김윤배

돌아오지 않는 날 - 김윤배 심장에 무거운 침묵을 올려 떠나는 여행이었다 지친 나비의 날개를 위로하기 위해 흰 꽃들의 하염없는 낙화를 눈물짓기 위해 설레었던 순간의 깊은 화인을 지우기 위해 계절 내내 흔들리는 눈빛을 위해 마침내, 떨림을 감추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다 속죄일 거라고, 속죄여야 한다고 가슴을 쥐어뜯던 회한의 시간들을 목숨하고는 바꿀 수 없는 거냐고 수없이 반문하고 반문했던 하루하루, 불면 속의 악몽과 밤마다 내리는 장중한 빗소리의 힐문과 두려움, 돌아오지 않는 날의 번뇌를 다 사면받을 수는 없겠다 이 여행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를 *시집/ 언약, 아름다웠다/ 현대시학사 가혹한 봄날 - 김윤배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겨울부터였다 마주 앉은 짧은 순간의 일이었..

한줄 詩 2021.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