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러므로 - 김희준 망가진다 단지 읽어낼 수 있는 건 문양뿐이다 삐걱거리는 순간 방의 조직이 괴사한다 열어둔 통조림에서 이국의 햇빛이 쏟아진다 알루미늄 뚜껑에 생이 베인다 달콤한 피가 고인다 내 무덤은 깡통에 있을 거야 문은 열어도 문이거든 환풍기로 잘리는 바람이 물컹하다 높아지는 천장에서 뭘 하면 좋을까 잘린 바람이 머릿속을 헤맨다 몇 구의 사체가 곁에 눕는다 단물을 뱉자 햇빛이 목에 걸린다 동굴은 퍼지는 것을 오래 잡아둔다 이국의 태양과 절름거리는 바람이 다음 세기까지 머무를 것이다 파인애플 진액이 팔꿈치로 흐른다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나를 저미는 순간 태양이 몸을 푼다 밀고와 열고의 차이를 안다면 동굴을 빠져나오는 거야 문을 열지 않았던 건 유통기한이 지나서다 오래전 죽어버린 내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