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돌아오지 않는 날 - 김윤배

마루안 2021. 4. 10. 21:46

 

 

돌아오지 않는 날 - 김윤배


심장에 무거운 침묵을 올려 떠나는 여행이었다

지친 나비의 날개를 위로하기 위해
흰 꽃들의 하염없는 낙화를 눈물짓기 위해
설레었던 순간의 깊은 화인을 지우기 위해

계절 내내 흔들리는 눈빛을 위해

마침내, 떨림을 감추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다

속죄일 거라고, 속죄여야 한다고 가슴을 쥐어뜯던 회한의 시간들을
목숨하고는 바꿀 수 없는 거냐고 수없이 반문하고 반문했던
하루하루,

불면 속의 악몽과 밤마다 내리는 장중한 빗소리의 힐문과 두려움,

돌아오지 않는 날의 번뇌를
다 사면받을 수는 없겠다

이 여행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를


*시집/ 언약, 아름다웠다/ 현대시학사

 

 

 



가혹한 봄날 - 김윤배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겨울부터였다 마주 앉은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전동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시차를 두고 올라와 커피점 안은 잠시 소란스럽다 조용해지곤 했다 그 정적의 순간은 눈빛이 흔들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눈빛은 생의 저쪽을 응시했다 창밖은 무너지는 벚꽃의 상심으로 발소리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눈빛 흔들리는 가혹한 봄날은 출구가 없었다 아직은 무사하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몸이 먼저 가혹해지는 광장이었다

가혹한 것은 눈빛이다 눈빛은 수많은 칼날을 숨기고 있다 가장 두려운 칼날은 사막의 붉은 모래들을 잘라 그 피로 자란 칼날이다 그 칼날이 숨기고 있는 건 결정적인 순간에 햇빛을 잘라 어둠을 만들고 싶은 눈빛이었다

사람들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자 패자는 웃었다

봄날은 색깔에도 승자와 패자를 갈랐다

봄날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꿈 - 서상만  (0) 2021.04.11
우는 냉장고 - 윤석정  (0) 2021.04.10
우리도 그럴 때가 있잖아요 - 최세라  (0) 2021.04.10
불편으로 - 이규리  (0) 2021.04.09
금요일은 분홍이다 - 이강산  (0) 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