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운다면 - 손남숙 어느 집 슬레이트 지붕 골짜기로 흘러 내려오는 붉음 같겠지 박태기는 선명한 분홍색을 핏물처럼 빼내는 중이었어 빈집 꼭대기 위로 올라가 하염없이 머나먼 길을 돌아온 어느 자식의 긴 밤을 같이 보내려던 것이었지 마침 곁에는 밤새 엿듣는 나무가 있었어 벚나무는 우연히 흘러 들어온 방랑객처럼 그 집 마당 구석에 서 있었지 뭔가 운명처럼 서로를 맞대 보는 날도 있는 거지 봄날에 먼저 쏟아지는 건 벚꽃이야 흩날리며 제 울음을 바삭하게 말려 보내면 옆에서 가만히 들어 주던 박태기가 별안간 깜짝 놀랄 분홍색을 만들어 슬그머니 금이 간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꽃들의 눈물이 배어 들어가 눈물은 천장을 타고 무너져 가는 서까래 밑으로 떨어지겠지 삐걱거리던 마루는 다 뜯겨 나가고 없어 꽃잎들이 낱낱이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