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수면유도제 - 전영관

수면유도제 - 전영관 신의 안검이 덮이듯 밤이 오면 신문 부고란에 투고하고 싶어진다 한파를 건너오느라 발 시린 슬픔만 과장된 바람에게 신을 신겨주고 싶다 폐지 할머니의 리어카를 보험이 필요 없는 나라로 밀어주고 싶다 등 돌리는 길고양이에게 사람을 버리듯 내게서 떠나는 몸짓이냐고 묻고 싶다 자동문보다 눈치 빠르게 벽만큼 신중하게 고민한 후에 애인보다 가까운데 실속 없는 편의점에서 부모처럼 수고롭고 멀지만 다 갖춘 마트로 개종하고 싶다 책마다 그득한 밑줄들을 낙서라고 지워버렸다 이전의 호감들은 오해였다고 끄덕였다 내 문장은 비문이라 낙담하면서 절창의 제국에 난민 신청 하고 싶다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초월을 터득하고 싶다 건강할 때는 사소하다 흘려버렸던 사소한 것들의 목록을 되찾고 싶다 내 앞에서 먼저 죽는 참..

한줄 詩 2021.04.22

입구와 출구에서 생이 서로 마주쳤을 때 - 이규리

입구와 출구에서 생이 서로 마주쳤을 때 - 이규리 물이 줄줄 흐르는 은하탕 벽엔 애써 붙인 주의들이 다 떨어졌다 우리가 결국 무얼 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애써 닿지 않으려 거리를 유지하지만 서로 보이지 않으려다 보게 되는 것 돌아나가다 부딪게 되는 것 다 벗고도 우리 단순해지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 그리고 흘러넘치는 손과 발 입구와 출구에서 생이 서로 마주쳤을 때 물가엔 얼룩말과 낙타 끝없고 덧없다 퇴장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경기처럼 저마다의 사막이자 고원에서 짧은 순간에도 상대의 슬픈 이력을 엿보아야 했다면 물이 줄줄 흐르는 수평도 절벽이 되는 난간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하고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거즈의 방식 - 이규리 진물이 말라붙은 거즈를 보면 그들은 어느새 한몸이 되어 있다 굳이..

한줄 詩 2021.04.22

출판사 하고 싶을 때 읽는 책 - 김흥식

서점에 갈 적마다 신간 도서 코너를 제일 먼저 들른다. 신문이든 포털 뉴스든 각종 미디어에서 신간 안내 기사를 읽은 후에 관심 가는 책을 만나면 마음이 설렌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책을 발견할 때는 보물이라도 찾은 듯이 반갑다. 반면 정체 불명의 저자에다 기존에 나왔던 것을 모방한 책을 볼 때면 입안 가득 씁쓸함이 고인다. 유튜브를 볼 때 함량 미달의 내용으로 앵벌이를 하는 양아치 유튜버들이 있듯이 출판계도 앵벌이 수준의 출판인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흥식 선생은 3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했다. 제목이 너무 정직해서 다소 허술하게 느껴지나 내용은 아주 진지하다. 출판인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하다. 나도 이 책을 읽고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책의 일생을 파헤..

네줄 冊 2021.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