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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꼬을 트다 - 강영환

몰꼬을 트다 - 강영환 이녘 산과 저녘 들판을 적시던 눈물난 홍수가 물러나자 불어났던 강물도 빠진 뒤 갈대 꺾인 강안에는 북녘에서 떠내려 온 흰고무신 한 짝 체증 든 산하에 엎드려 누웠다 한 짝이래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고무신을 끌어 올려 눈두렁에 뉘어 놓고 임진강 젊은 농부는 지나치는 길에 슬쩍 발을 맞춰 본다 아직도 생생한 고무신 주인공은 무사한 걸까 어쩌다가 떠내려 보내게 되었을까 주인도 농사일 하는 무지렁일까 넘나드는 백로에게 신겨서라도 돌려 줄 방법이 없을까 남은 짝 마저 강물에 떠내려 보내 준다면 외짝 고무신 짝 찾는 날 막힌 물꼬를 시원하게 터서 저녘 산과 이녘 들판 적시는 눈물 홍수라도 함께 만들까보다 *시집/ 숲속의 어부/ 책펴냄열린시 늘상 비애 - 강영환 복사빛깔 고운 두 볼에 주려고..

한줄 詩 2021.04.27

허공에 우울증이 매달려 있다 - 심명수

허공에 우울증이 매달려 있다 - 심명수 관념의 다이아몬드 못을 박아 거미가 집을 지었다 먹줄 튕기며, 팽팽한 얼개 때론 탄력 있게 얽어놓고 사람들은 함부로 그 생의 회로도를 빗자루로 쓸어낸다 청소용역인처럼 중요한 증거를 함부로 삭제해 버린다 가끔 누락된 것들 사다리 타고 내려와 쓸려나간 원인을 묻고 가기도 한다 누군가 이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누락되었다 맑은 허공에 파문이 인다 파문은 거미집처럼 의혹을 남기고 허공을 아파한다 허공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고질병 같은 안개 밀려왔다 밀려간다 말랑말랑한 잠을 흔들어 깨워놓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 핼쑥한 그림자도 끌고 와 발밑에 함부로 버린 나의 원고들과 생의 질긴 목을 조인다 누가 방아쇠를 당겼을까 반짝이는 물결, 깨진 거울이 생각을 어지럽힌다..

한줄 詩 2021.04.27

벽 장미 - 김선향

벽 장미 - 김선향 수원역 옆구리 고등동 청소년출입금지구역 초입 벽에 그려진 장미 한 송이 빳빳한 오만 원권 지폐를 쥐고 서성거리던 사내가 그리기 시작했을까 돈 대신 장미를 찾아 이 골목을 벗어나고픈 광대뼈 불거진 그녀가 그리다 말았을까 손님이 뜸한 장마철 잎사귀도 가시도 없는 벽 장미는 헤실헤실 웃고 있네 주르륵 피눈물을 흘리네 애초에 글러먹은 칠삭둥이처럼 일찌감치 끝장난 폐인처럼 피다 만 장미 그렇다고 지지도 못하는 붉은, 집 잃은 검은 개 황홀한 향기를 맡으려는지 연신 담벼락을 킁킁거리네 *시집/ F등급 영화/ 삶창 여신 쿠마리 - 김선향 네팔에는 아직도 살아 있는 여신이 있다지 쿠, 마, 리, 혈통과 가계가 온전한 집안의 어린아이는 수십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네 마지막으로 성스러움이 있느냐를 ..

한줄 詩 202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