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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송주홍

아주 흥미롭고 유용한 책을 읽었다. 서른두 살의 기자 출신이 노가다를 하며 겪은 일을 쓴 노동일기다. 세상의 모든 일이 대졸자 엘리트 출신들 위주로 흘러간다. 당연 고졸자가 대우 받는 분야는 거의 없다. 어떤 엄마가 초등학생 아이와 공사 현장 부근을 걷다 학원 가지 않겠다고 투정부리는 아이에게 그랬단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런 사람 된다." 이렇게 노가다를 하는 사람은 세상의 낙오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아쉽게도(?) 대학을 나와 기자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어쩌다 잠시 노가다를 했다가 적성에 맞는 것을 알고 아예 노가다 판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일부는 글을 쓸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정신과 육체가 꽤 건강함을 느낀다. 저자는 행복을 최고 가치로 ..

네줄 冊 2021.05.05

아침이라는 영정사진 - 천수호

아침이라는 영정사진 - 천수호 푸르스름한 수염으로 그가 왔다 이 땅의 청년으로 다시 오지 않을 듯이 사진 속에서만 햇빛 웃음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세상에서 살아왔지만 간혹 가래침을 맞는 영상이 뜨기도 했다 멱살 잡히는 장면은 뉴스감이 되지도 못했다 암청색 바탕화면에 검은 형상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침은 그런 것이다 주검으로 정지되었던 사물들이 창을 내고 빛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이런 영상은 매일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죽어가는 오늘 아침은 내일 그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단단한 사각 틀 안에 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화면 밖에서는 목련이 핀다는 봄의 말이 말이 들리지만 발인의 국화 향기가 줄을 서는 아침이다 꽃잎은 빳빳하지만 이 흰 꽃들에게 정규직이라는 꽃말은 없다 웃음이 정지된 사진으로는 ..

한줄 詩 2021.05.05

구석에서 울다 - 박인식

구석에서 울다 - 박인식 방랑보다 황홀한 인생은 없어 내 인생 지금껏 길 위에서 황홀했네 집 구석구석에는 방랑길의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머무르지 못하는 내 생애 앞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줄 모르고 이제야 간신히 어디로도 떠나고 싶지 않을 무렵 볕들 날 없던 그 구석에는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내 시간이 나이 저문 줄 모르고 허리 꺾어 울고 있네 *시집/ 언어물리학개론/ 여름언덕 어느 활자중독자의 무인도 표류기 - 박인식 #1 어느날 빈 라면 포장지 하나 파도가 실어다 주었다 읽을 거리가 포장지 라면 조리법밖에 없어 허기를 숨 쉴 때마다 읽어야 했다 조리할 때 파와 달걀을 곁들이면 더욱 맛이 좋아집니다 #2 처음 읽는 이름의 라면이었다 뽀뽀라면 조..

한줄 詩 202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