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석미화 검은 산 아래 귀신집 살림살이라고 누가 써놓고 갔다 봄날, 귀신같은 사람들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일 언제 떠난다고 했지 뜨거운 냄비를 상 위에 올려두면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혔다 술병이 쌓인 만큼 돌아갈 길은 더 멀어졌다 바깥만 바라보는 일에 반쯤 혼이 나간 여자는 가족은 그러면 안 되지, 중얼거렸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참, 그렇지 비 오는 날에는 맑게 앉아서 앞으로의 거처들을 말했다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점차 거세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해야 할 말보다 하고 싶은 말만 쌓여갔다 검은 산에 불타는 얼굴이 겹쳐 보이고 천장에서 거미가 내려오고 밤에 보는 거미는 불길하다며 서로를 몰아세웠다 그래도 여기 살 만하지 비가 그치면 이만한 데가 없지 분명 누가 돌아보았는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