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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피 닦던 날 - 이형권

등피 닦던 날 - 이형권 등피를 닦던 날이 있었습니다 나직이 입김을 불어 그을음을 닦아내면 허공처럼 투명해져 낯빛이 드러나고 그런 날 밤 어머니의 등불은 먼 곳에서도 금세 찾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믐날 동네 여자들은 모두 바다로 가고 물썬 개펄에는 거미처럼 움직이는 불빛들로 가득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는 바다는 분꽃 향기 나던 누이들의 가슴처럼 싱그럽고 조무래기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북두칠성이 거꾸로 선 북쪽 하늘을 향해 꿈을 쏘아 올렸습니다. 묵은 시간의 표피를 벗겨내듯이 밤하늘에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범바우골 부엉이가 울고 가도록 어머니의 칠게잡이는 끝이 없었습니다 *시집/ 칠산바다/ 문학들 범태상회 - 이형권 아버지가 열무김치에 쓴 소주를 마시던 곳이다 곰살궂게 쫀득거리던 고무과자에 군침..

한줄 詩 2021.05.10

욕망과 파국 - 최성각

작가 최성각은 언젠가부터 환경운동가로 불린다. 태생적으로 문명화 사회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 것 같은 사람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몇 권의 소설을 발표했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다. 내가 읽은 그의 글은 환경 관련 책이다. 다독을 하는지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많이 남긴다. 이 책도 그가 읽은 환경책에 관한 해설이다. 김종철, 권정생, 그레타 툰베리 등 환경 문제를 지적했던 사람들의 책 위주다. 책 목록을 보니 내가 안 읽은 책이 대부분이다. 평소에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고 환경 문제에 대한 각성을 하고 살면서도 그렇다. 누구 따라할 생각은 없고 이라는 책 하나로 그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함께 보낸다. 무슨 연애 소설 제목처럼 보이지만 물질을 쫓는 인간의 욕망과 필연적 그 ..

네줄 冊 2021.05.10

나지막이 부드럽게 - 김태완

나지막이 부드럽게 - 김태완 무거운 몸 이라고 생각하니 더 무거운 몸 부는 바람도 버겁다 걸음은 짧아지고 생각은 깊어지고 평생을 살아도 알 수 없는 길에서 비는 길게 내리고 흘러온 바다 요동치며 뿌리를 흔든다 나 그만 갈래 엄마, 나 그만 가면 안 돼? 나지막이 부드러운 음성 마음을 다독이는 소리 먹먹한 가슴으로 보이는 저기 저 불빛 그래도 가자, 꼭 잡은 손이 따뜻하다 무거운 몸, 일으키니 나지막이 빛 고운 야생화 언제부터 있었던가. *시집/ 아무 눈물이나 틀어줘/ 북인 꿀, 벌 - 김태완 한 무리의 벌 떼 꽃이란 꽃은 모두 움츠린다. 벌은 꿀이 될 수 있을까 혹은 꿀로 벌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이 되어서야 고개를 숙였다. 그 뻣뻣하던 위장을 낮추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이 자세는 인정한다는 뜻과 이..

한줄 詩 2021.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