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반성 - 편무석

마루안 2022. 7. 27. 22:00

 

 

반성 - 편무석

 

 

가을은 나의 발치

처음 슬픔이란 지병을 얻은 것도

내가 태어난 가을

 

겁도 없이 덤비다

꺾이고 찍혀

능청스레 붙잡아 둔 삭정이를

온몸에 박힌 옹이를

엄살로 갈고닦은

그늘은 편리하고 따뜻한 병상

 

몸이 뜨거워 주체하지 못한 나무가

분신(焚身)에 들 때

 

너무 크게 벌린 나의 입은

가을의 아궁이

울컥울컥 넘치는 핏빛

재를 받는다

 

흰 눈이 자랄 때까지

제 살 찢어 우는,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 눈에

야위어 가는 흰 바람

 

 

*시집/나무의 귓속말이 떨어져 새들의 식사가 되었다/ 걷는사람

 

 

 

 

 

 

간월도 - 편무석

 

 

살아내지 못할 것 같던 날들이었지

고비마다 뛰어들던 달빛에

이별을 달려온 길은 기적이었어

 

건너를 향해

내민 손이 뒤틀린 나무는

 

오랜 시간 흔들려서야

물결의 상념을 키워

물결을 부르는 마음에

닻을 던진 서해가

짐을 풀고

 

썰물에 느긋하게 모래톱을 내며

함께 건너자는데

저 달의 빈방,

납작한 달빛에 몸 지지며

들고 싶은

 

내 안에 든 나는

썰물처럼 빠지는데

낮은 물결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는

누가 부른 이름인가

 

 

 

 

*시인의 말

 

생을 더듬는 슬픔이 저녁별 같았다

 

귓속말은 정말 한 끼의 식사가 될 수 있을까

새들의 힘을 너무 쉽게 빌려 썼다

갚을 날 있을까

나무는 빛을,

 

뜨거운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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