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 - 박판식

마루안 2022. 7. 28. 22:16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 - 박판식

 

 

25 곱하기 2에 빼기 2, 어린 아들은 무엇을 계산하는가

검은 장미, 하늘은 후퇴를 거듭하는 중이다

운이 다한 거북이가 바다로 돌아가는 길에 굶주린 자칼을 만난다

 

스물다섯 나이에 죽은 엄마를 만나러 쉰여덟 나이의 아들이 하늘나라로 가면

아빠 같은 아들과 딸 같은 엄마가 만나겠네

 

장구벌레들이 눈송이처럼 떠 있는 웅덩이를

엄마 하고 불러본다

 

나가려고 옷을 차려입었다가 다시 하나씩 벗고

발가숭이가 되어

중환자실의 외삼촌 자세로 누워본다

 

임신한 아내가 냉면을 찾는다

뱃속의 아이는 실컷 놀았다

제아무리 더하고 빼도 세상의 무게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시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문학동네

 

 

 

 

 

 

나는 말한다 - 박판식

 

 

인생은 발걸음이 빠르다, 화요일에는 엉터리 같은
결심을 하고 금요일에는 2킬로그램쯤 살을 찌워서는
물방울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그 결심에 구멍을 내고 있다

마음은 사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구멍이 난다
이이는 사, 삼삼은 구, 사사 십육
아무런 문제 없는 인생은 우리를 속이는 거라고 이 친구야

삼 개월 감봉 당한 친구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목 아래로 흘러내린 양말을 당겨 올린다
곧 눈이 내릴 것만 같다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죽는다
굴다리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외삼촌은 갑자기 파산했고
내용 없는 엽서가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무엇인가가 이 세상에서
당신과 나를 놓지 않고 있다
그 못은 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착오라도 있었다는 듯이 눈은 내리자마자 녹아버린다
바람이 눈을 밀치고 행인과 입간판을 차례로 밀친다
떠밀린 채로 문이 열리고 다시 문은 열리고


 

 

 

*시인의 말

 

택시 안에서 돌아보니 4기 폐암 환자인 그가

인천사랑병원 환자복을 입고

자신의 손바닥 안에다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

그는 지금 외로울까 후련할까

죽음을 통보받은 사람의 재담에 우리는 울다가 웃다가

꽤나 속이 쓰라렸다.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가 나이롱환자인지 우리가 나이롱환자인지

모르게 되는 경이의 순간이 있다

 

죽었다 깨어났을 때 하는 대부분의 사람의 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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